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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에그 Jan 22. 2024

오갈 데 없는 신세



편과 나는 동갑이다. 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는 학창시절 여의도 광장에서 자전거도 타고 동대문에 가서 롤러스케이트도 타던 같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남편이 태어난 곳은 구로동이다. 결혼전까지 하안동에서 살고 있었다. 시댁은 살던곳 근처인 하안주공아파트를 분양받아 1990년에 입주를 했다. 남편은 나와 달리 결혼전에도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거다.

아버님은 개인택시를 하셨다. 쉬는 날이면 어머니를 태우고 이곳 저곳 바람쐬러 잘 다니셨다. 어느날 강화도를 가다 48번 국도 옆에 있는 아파트 하나를 발견한다. 새아파트에 공기가 끝내준다. 때마침 미분양 플랭카드를 본거다. 구경하는 집으로 들어간다. 

현대건설에서 지은 42평 아파트는 넓고 좋다. 그날이후 시부모님은 새아파트로 이사를 하셨다. 그때가 2000년 내가 만삭의 몸을 이끌고 집구경을 갔기에 생생히 기억한다. 김포 초입에서 가도가도 끝이 없던 그곳을...

빚만 지고 가게를 정리하고 나니 우리 세식구 오갈 데 가 없어졌다. 그래도 믿을 곳은 하나. 시댁이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장사를 한다고 할때 극구 말렸다. 어머니도 빚을 싫어하는 분이다. 

시댁으로 들어가겠다는 남편의 말에 어머니는 장가를 안 간 아주버님이 있어 안 된다고 한다. 언제 결혼할지도 모르는 형때문에 우리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남편은 불같은 화를 냈다. 기가 죽어있던 나와는 달리 역반하장도 유분수다. 역시 막내기질이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결국 어머니는 백기를 들었다.

2002년 가을. 우리는 수원에 있는 짐과 양평에 있는 짐을 시댁이 있는 김포로 옮겼다. 42평 방4개인 아파트라 천만다행이다. 여섯식구가 살아도 무리가 없었다. 시부모님은 첫 손주라 아이를 이뻐해주셨다. 특히 어머니는 없는 형편에도 아들 둘을 사랑으로 키우신 분이다. 

그다지 잘난게 없어 보이던 남편은 내게 없던 자존감이 높았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자존감이 어머니의 사랑때문이었다는 걸 시댁에 살면서 알게 되었다.

시부모님이 잘해주신다해도 시댁은 시댁이다. 아주버님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빨리 돈을 모아서 분가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장사를 정리하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자신감을 상실한 나는 아무일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점점 고부간의 갈등은 깊어져 갔다. 모시고 살아도 그럴진데 우리는 지금 얹혀살고 있지 않은가.

아이가 4살이 되었다. 이제는 어린이집에 보내도 된다. 넓은 부지에 텃밭에서 기른 식재료로 아이들 밥을 해주는 어린이집이 있다해서 그곳에 아이를 보냈다. 이름도 '전원어린이집'이다. 그리고 직장을 알아본다. 경력도 없는 애엄마가 무슨일을 할 수 있을까? 

시댁은 김포통진으로 강화도에 더 가까운 곳이다. 사는 곳은 아파트였지만 주변은 논과 밭이 대부분이다. 구석구석 소규모 공장들이 많이 있었다. 공장이나 사무실이나 여직원 한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는 구인광고에 '초보가능'이라고 써 있는 공장경리로 취직을 했다. 그렇게 1년만 일하면 그 경력으로 이직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던 2003년 어느날 참여정부가 2기 신도시를 발표했다. 바로 '김포한강신도시'다. 시댁주변에는 땅부자들이 많다. 아이친구네는 카센터나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신도시발표가 나자 동네가 난리가 났다. 시댁어른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집을 팔아서 땅을 사야 하는거 아니냐고 했다. 

여전히 나는 부동산에 '부'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관심도 없었다. 오직 빨리 돈을 모아서 분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2년동안 근무를 하면서 빚을 갚고 여유돈 천만원이 생겼다. 부족한 돈은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시댁 근처의 빌라로 분가를 했다.

아이가 6살이 되었다. 집에 어린이집 친구가 놀러왔다. 동화책을 술술 읽는다. 우리 아이는 글을 모른다. 충격이었다. 그동안 먹고 사는데 바빠서 아이 공부는 뒷전이었다. 이제 곧 7살이 되고 금방 초등학교에 들어갈텐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남편과 상의를 한다. 아이가 어릴때는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이곳이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그러나 학업을 생각한다면 이곳은 아니었다.

아이를 위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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