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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에그 Jan 18. 2024

두 번째 장사


"장사해보지 않을래?"

"뭔 장사?"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용품 준비를 남편과 함께 했다. 첫아이다보니 살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았다. 1년 먼저 아이를 낳은 언니 덕분에 물려받은 물건도 많다. 언니가 아니었으면 필요없는 물건을 많이 샀을거다. 우린 초보엄마아빠니깐...


밀레니엄 베이비들 때문인지 유아용품점은 갈때 마다 사람이 많다. 고가의 수입용품점부터 저가의 출산용품점, 브랜드 용품점과 처음 들어보는 용품점등 가게도 다양하다. 아이를 낳고보니 필요한 것은 더 많아졌다. 유아용품만 보던 나와는 달리 세상 살아가는 눈이 있던 남편에게는 돈이 보였나보다. 유아용품점을 해보자는 것이다.


한번의 장사경험이 있는 나는 남편의 제안에 순간 귀가 쫑긋했다. 그러나, 돈도 없고 아이도 어리다. 이런 우리가 뭔 장사를 하냐고 했다. 나는 겁이 많고 걱정이 많으며 부정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일을 시작하려면 돌다리도 몇번을 두들기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될만한 일만 하며 살아왔다. 반면 남편은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라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우선 한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찾는 스타일이다.


"돈이 어딨어?"

"전세보증금을 빼고 부족한 돈은 빌려보자."


"아이는?"

"엄마한테 말해볼게."


"어디서 살아?"

"저렴한 월세로 가야지."


너란 남자 증말 대단하다. 나란 여자 증말 또 넘어가는구나.


우선 어머니께 갔더니 무릎수술 한지 얼마 안되서 아이를 못봐준단다. 늦은시간까지 일해야 하는 장사라 돌쟁이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면 시작은 어렵다. 그런데 사정 얘기를 들은 언니가 아이를 봐준단다. 자기집이 있는 수원에서 가게를 오픈하면 어떠냐고 한다. 형부가 해외 근무중이라 방한칸도 내준단다.


이젠 짐이 문제고 돈이 문제다. 시이모님은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크게 하시는 분이다. 때마침 양평에 전원주택을 사서 이사를 하셨다. 돈도 빌려주고 창고에 짐도 맡겨주신다고 한다. 하나도 안될거 같던 일들이 술술 풀렸다. 꼭 장사를 하지않으면 안될 사람처럼.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100만원짜리 전집을 구입했다. 태교때도 읽고 태어나서 읽히면 좋다는 영업사원 아줌마한테 넘어갔다. 이래 저래 잘도 넘어간다. 아이가 태어나자 인터넷도 발달되지 않은 때라 정보력이 부족했다.


책대여점할때 잡지도 대여했기에 생각나서 '월간 베이비'를 1년간 정기구독했다. 잡지 특성상 반이 광고다. 아가*, 해피**등 브랜드유아용품점 광고부터 저가의 출산용품점까지 다양하다. 그중 눈에 들어오는 '수입유아용품 체인점 오픈 문의 환영' 이라는 문구를 봤다.


이사하며 도배장판을 하고 오래된 싱크대가 맘에 안들어 시트지작업까지 했다. 오래오래 살아야지 했던 두 번째 보금자리는 6개월 살던 곳이 되었다. 또 남좋은 일만 시켰다. 돌이 지난 아이와 함께 필요한 짐만 실은 용달차는 수원으로 향했다. 서른살 동갑내기부부가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날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가게로 우리는 금방 빚을 갚고 부자가 될거라고 믿었다.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아 옆가게에서 '영업정지가처분신청'이 날라왔다. 천청벽력같은 일이다. 우리가 얻은 상가는 단층건물로 4개동이 중정을 두고 삼각형모양으로 띄엄띄엄 있는 건물이다. 바로 옆에 10층규모의 여성병원을 신축중에 있어 준공이후를 생각하고 들어간거다. 그당시 4개동 중 다른동에 이미 유아용품점이 들어와 있었다. 그쪽은 국내용품위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는 수입유아용품위주라 문제가 될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4개의 상가는 소유주가 한명이다. 유사업종이 들어올 걸 예상한 옆가게는 계약서에 '유사업종을 들이지 않겠다.'는 특약을 넣었단다. 그 단서조항으로 인해 두 가게는 법정싸움에 들어가게 된다. 없는 형편에 빚을 내서 시작한 가게다. 비싼 변호사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몇개월간의 공방끝에 '이유없음'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제 정신차리고 장사에 매진해야 한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건물주는 단층 건물을 허물고 고층 오피스텔을 지을거란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상가를 비워달라고 한다. 결국 가게를 권리금을 받고 넘길 수도 없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만 받고 나와야 한다. 나만 그런게 아니다. 싸웠던 가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억울한 상황이 또 있을까? 건물주는 수원에서 잘나가는 법무사라고 했다. 그런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무지한 내 잘못이다. 기존 가게를 인수하는 것과 새롭게 가게를 오픈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었다. 좀 더 신중하게 가게를 알아봤어야 했다. 그러나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날이후 계약기간까지 영업을 한다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 가진 물건을 원가에 처분했다. 장사한지 1년도 안돼 가게를 정리했다. 빚을 진 상태로 집도 없이 어린아이와 어떻게 살아갈지 정말 막막했다. 아이가 없었다면 한강으로 갔을 지도 모른다.


우리 세식구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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