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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에그 Jan 25. 2024

이사는 이제 그만!



시댁에서 분가하며 얻은 빌라는 전세 3,000만원. 논뷰에 방3개로 24평 아파트 크기다. 전세자금대출 최대 60%에 모은 돈을 보태면 가능했다. 다니던 직장은 8시 출근 5시 퇴근이다. 공장지대가 많다보니 출퇴근시간은 늘 전쟁터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장은 이시간에 출퇴근을 했다. 

분가를 하고나니 아이가 걸렸다. 시댁에서는 어머님이 등하원을 담당하셨다. 이제는 내가 해야 한다. 8시 출근을 위해선 7시 반에 집을 나서야 한다. 자는 아이를 들쳐 업고 차에 태워 어린이집에 가면 1번이다. 어떤 날은 문이 안 열려 기다리기도 했다. 선생님께 내던지듯 아이를 맡기고 출근이 늦을까봐 엑셀을 밟는다.

겁이 많은 나는 대학다닐때 운전면허를 땄다. 대학생할인이라는 광고에 넘어갔다. 그때부터 잘 넘어갔다. 필기는 자신있었지만 실기는 몇 번만에 합격했다. 내가 생각해도 감각이 그닥이다. 

김포통진은 대중교통이용도 쉽지 않다. 우선 배차간격이 길다. 어디 한번 나가려면 시간을 넉넉히 잡고 가야 한다. 게다가 어린아이와 버스로 이동은 최악이다. 중간에 아이가 잠이라도 들면 짐가방에 내릴때 조마조마하다. 

가게를 정리하며 차도 팔았다. 우리 형편에 차는 사치였다. 아이를 생각하면 차가 있어야 하는데 참았다. 그런데 공장에 취직하려니 차가 필수다. 남편은 이참에 새차를 사자고 한다. 내가 취직을 하니 할부금을 갚아 나가면 된단다. 중고차는 수리비땜에 안된단다. 나란 여자 또 넘어간다. 10년 장농면허에 종지부를 찍었다. 첫차를 겁도 없이 새차로 시작했다. 카렌스2. 나의 첫차다.

분가한지 1년만에 또 이사를 준비한다. 아이때문이다. 어디로 가야할까? 3천만원으로 갈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래도 살았던 곳이라고 부천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중동신도시는 이 돈으론 어림도 없다. 아니 아파트는 꿈도 꾸지 마라. 

주말마다 상습정체구간인 외곽순환도로를 달린다. 그래도 운전하니 좋긴하다. 이제 우리가 집을 고르는 기준은 단 하나. 초등학교 근처다. 이왕 이사하는거니 큰길을 건너지 않고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여야 한다. 중동역남부에서 멀지 않은 송내동의 빌라를 계약했다. 방2개에 거실이 따로 있는 집이다. 진짜 초등학교가 코앞이다.

이사를 하니 당장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한다. 때마침 아랫집에 동갑내기가 살고 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보내는 어린이집이 나쁘지 않다. 아침에 아이를 보내고 하원할때까지 아랫집엄마와 나는 언니동생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맞벌이를 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분가후 아이를 새벽에 들쳐업고 어린이집에 보냈던 기억이 있다. 당분간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입학전에 한글공부도 시켜야 한다. 우리가 이사를 한 이유다. 

입학하기 전 1년동안 눈높이 학습지를 시켰다. 한글떼기 성공이다. 아랫집엄마는 아이들 책에 관심이 많다. 함께 도서관에 가서 동화책을 빌려오는게 일과가 되었다. 태교때부터 책을 읽었고 태어나서도 열심히 읽어줬다. 김포에 살때 자기전에 책을 읽어줬다. 직장다니느라 피곤한 나는 아이 책을 읽어주며 잠이 들곤 했었다. 이제는 아이가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다.

2007년 봄.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나는 학부모가 되었다. 학교가 코앞이지만 첫애다. 손을 잡고 등하교시간을 함께 한다. 그 시간들이 행복했다. 돌쟁이를 언니한테 맡겨두고 쉬는 날도 없이 장사를 했다. 아이는 언제올지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며 울다 잠들었을거다. 

조카는 1999년생. 우리 아들과는 17개월차이다. 언니는 아이를 봐준다고 했던 본인을 자책했다. 연년생 남자 아이 둘을 보는 일이 힘든 일이란걸 언니도 알지 못했다. 자기 아이가 아니라 더 힘들었을거다. 장사로 힘들어하는 내게 힘든 내색을 하지도 못했을거다. 언니는 내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전세만기가 돌아온다. 부동산가격이 계속 오른다. 전세자금대출도 못갚고 외벌이에 불안하다. 여전히 집을 살 생각은 없다. 전세보증금을 올려주고 재계약을 해야하나 고민중이다. 그런데 사는 곳 근처 임대아파트의 예비입주자모집공고를 보게 된다.

준공한지 1년도 안된 21평 아파트로 흔하지 않은 계단식아파트다. 저렴한 보증금과 임대료로 30년 거주를 보장받을 수 있다. 아파트에 살다 빌라로 오니 아파트생활이 그리웠다. 다만 걸리는 건 초등1학년인 아이다.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고민끝에 이사를 결심한다. 살아보고 아니면 다시 이사를 하면 된다.

2007년 가을 우리는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1999년 결혼해서 신혼집을 시작으로 8년동안 7번의 이사를 했다. 이사는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아이는 전학을 했다. 임대아파트도 걸리고 입학후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든데 전학까지 했다.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데 1학년말 시험에서 아이가 1등을 했다. 한글도 늦게 뗀 녀석이 기특하다. 덕분에 맘편히 임대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던 2008년 10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살 생각도 없었으면서 무리하게 집을 안 산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새집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행복하기만 하다. 적어도 30년동안 이사는 안해도 된다 생각하니 더 그랬다. 아이가 10살이 되던 해 맞벌이를 시작했다. 초등3학년이면 혼자 밥을 챙겨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수입이 늘어나자 그동안 고생한 것도 있고 해서 주말마다 외식과 캠핑을 다녔다. 여행과 맛집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국내 구석 구석 원없이 다녔다. 돈보다 추억이 쌓여 갔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불안이 엄습해왔다. 지금의 생활은 만족스럽지만 누구라도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된다면 어쩌나 싶었다. 모아 놓은 돈도 없는데 이렇게 사는게 맞는건가.

그때 우연히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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