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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23. 2024

뉴욕 제니 홀저 전시로 배우는 청중을 모으는 콘텐츠

제니 홀저의 뉴욕 구겐하임 전시에서 얻은 콘텐츠 제작 팁.

대학 시절부터 좋아하던 유명한 아티스트들 중 제니 홀저(Jenny Holzer)가 있습니다.


얇고 긴 전자 간판 안에 디자인 된 움직이는 텍스트 LED 작품이 대표적이죠.


전체적인 미감은 물론, 완성도 높은 타이포그래피가 기반이 된 홀저의 작업에 디자이너로서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주로 이야기하는 정치나 사회 문제, 삶의 깊은 의미에 공감하기엔 영 철없는 시기였는데도 말이지요.


(물론 영어도 잘 못할 때여서, 읽히지가 않으니 더욱 내용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홀저의 작품을 꾸준히 자주 접했고,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레퍼런스로도 여러번 사용했었음에도, 좀처럼 실제로 전시를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홍보 차 보내온 이메일에 그녀의 전시 오프닝에 관한 정보가 있더군요.


그녀의 나이 이제 73세. 이번 전시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달력에 잘 써붙여놓았다가 야무지게 오프닝 주간에 다녀왔습니다.


예술로서의 전시도 의미있게 감상했지만, 역시 브랜딩을 하다보니 그와 관련한 부분들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홀저의 작품에 그저 열광하던 20대를 지나, 이제는 그녀의 작품을 자신의 전문 분야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감상하는 제 모습이 어딘가 낯설기도 했구요.



홀저의 예술은 글자가 기본입니다. 공간에 빛나는 무빙 텍스트를 입혀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늘 관객에게 말해왔습니다.


“Just Read The Art.” 그냥 작품을 읽으라고.


진중하고 심각한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의미있게 전달하기 위한 홀저의 스타일과 다양한 시도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의 이목을 끌고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말마따나 자신의 작품을 “읽게” 만드는 홀저와 그녀의 팀의 전술이 어떻게 시대와 함께 더 진화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홀저의 관객 참여 유도 전략 (Viewer Engagement Tactics)]


1) 강력한 훅(Hook)


홀저의 이번 구겐하임 전시는, 그녀가 1989년도에 구겐하임에서 했던 전시를 2024년에 걸맞게 다시 재현한 것이 메인입니다.


구겐하임 특유의 원형 건축은 세계적으로 무척 유명하고 상징적이기에 그 자체로도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 내부 건축 구조를 따라 전 층에 띠를 두른 형태로 아름다운 LED TEXT가 물처럼 흐르고 있었으니, 뮤지엄을 들어서는 누구나 압도당할 수 밖에 없는 기획이고 작품입니다.


뮤지엄을 들어서는 관객들의 시선을 한 눈에 빼앗는 매력적인 대규모의 설치 작품. 1989년과 2024년을 잇는 그녀만의 시그니쳐 스타일. 이는 정말 강력한 훅으로 작용했습니다.


콘텐츠를 제작할 때 훅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Hook, ‘갈고리’라는 뜻인데요, 고객의 마음을 낚아채는 (사로잡는) 장치인 것이죠. 제목에 낚이고 썸네일에 낚이는 것, 다 이 훅 (갈고리)로 낚는 것입니다.


숏폼 영상, 유튜브 썸네일, 블로그 제목 등등… 전부 첫 인상에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


처음 관객에게 닿았을 때 얼마나 그들의 관심을 낚을 수 있는지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관심을 얻지 못하면, 콘텐츠는 소비되지 않으니까요.


홀저의 전시는 뮤지엄이라는 현실 공간 안에서 그것을 훌륭히 이해하고 세계적인 미술가다운 스케일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구겐하임에서 제가 이제까지 봤던 그 어떤 전시보다도 웅장하고 인상적인 첫 인상을 남겼음은 물론입니다.



2) 소셜 미디어 콘텐츠


전시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전시된 작품들을 보다보면, 얇고 녹슨 불길한 느낌의 금속 조각들이 벽에 걸려있는 곳에 다다릅니다.


아름답지만 그렇다 한들 딱히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지는 않은 비주얼이었습니다. 그러나 홀저의 작품이니 분명 무언가 쓰여있을 터.


슬쩍 다가가 보았습니다. 역시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널드 트럼프의 지난 대선 무렵 트윗들이었습니다. X(구 트위터)의 UI까지 함께 찍혀있더군요.


문법이 엉망이고 프로 정치인 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읽기 편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인데도 저도 모르게 여러 장을 꼼꼼히 읽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다른 관객들도 벽에 가까이 붙어 열심히 금속 조각을 들여다보고 있더군요.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나 뉴스 기사 같은 걸 읽는 것보다, 이슈가 되었던 그의 소셜 미디어 콘텐츠를 읽는 것에 사람들은 훨씬 관심을 많이 보입니다. 당사자로부터 직접 생산된 것이고 더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홀저는 이것을 효과적으로 참여 유도에 이용하여, 그녀의 작품이 그녀의 생각, 메세지와 함께 흥미롭게 읽히고 해석되도록 하였습니다.



3) 새로운 트렌드의 기술, AI


홀저같은 나이 지긋한 대가가 소셜 콘텐츠를 사용한 것도 놀라웠는데, 작품에 AI를 곁들인 것을 발견하고 나니 더욱 감탄스러웠습니다.


홀저의 평면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무척 안 좋았습니다. 의도적인 기획임은 분명하지만,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읽는 것을 포기하고 적당히 스쳐지나갈 법한 작품들이 많았달까요.


그러나 다른 글자에 비해 유독 “AI”가 잘 읽히는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우연이었을까요? 이 분… 그리고 전시팀… 키워드 마케팅을 마스터하신 분들이 틀림없습니다.


AI라는 글자는 현재 사람들에게 무조건 흥미를 유발하는 키워드입니다. 저 역시 AI라는 단어에 낚여 지나던 발걸음을 멈추고, 흐릿흐릿해지는 눈을 박박 비벼가며 작품을 열심히 감상했으니 말입니다.


“SlaughterBot”이라는 작품은 AI로 생성한 기하학적 모양을 넣어 만들어진 추상작품이었는데 그 또한 인상깊었습니다.


멈추지 않는 새로운 시도, 새로운 트렌드 적용, 시대의 요구에 맞춰 관객들과 소통하려는 노력… 이런 모습이 홀저를 예나 지금이나 트렌디한 예술계의 대가로 만드는 것이겠죠.


*The "Slaugherbots" photo is from NYT article*


4) 인포그래픽 (벤 다이어그램, 그래프 등)


인포그래픽은 소셜 미디어에서 상당히 잘 먹히는 형식입니다. 아마 많이들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비주얼을 이용해 정보를 간소화하기 때문에 이해가 쉬워지고, 사람들이 그래프나 밴 다이어그램 해독을 재미있어하고, 결과적으로 기억에 오래 남게 되는 등의 이유가 있지요.


홀저의 전시에 일렬로 족히 20점은 되보이는 작은 액자들이 걸려있었습니다. 그 안에 스케치는 정말 너무 작아서 신경질이 날 정도였구요.


그런데 이는 모두 그녀만의 인포그래픽이었습니다.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저를 포함 여럿의 관객들이 그 뜻을 해독해보기 위해 작은 액자 앞에 오래도 머물러 있었습니다.



소셜 미디어 콘텐츠의 도달률을 높이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소비 시간(watch time)입니다.


인포그래픽 뿐만 아니라 홀저의 작품들은 소비 시간을 시원시원한 방법으로 늘린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쪽집게 강사가 중요 포인트를 짚어준 것 처럼요.



5) 멀티 플랫폼 콘텐츠 배포


하나의 콘텐츠를 형식을 조금씩 바꾸어 여러 플랫폼에 올리는 방식으로 아웃풋의 볼륨을 키우는 게 좋다고 알렉스 홀모지 등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추천합니다.


홀저의 전시에서 같은 글이 다른 형태로 다른 곳에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밑의 사진 예시처럼, 같은 글이 액자에 평면으로 담겨있기도 하고 돌의자에 새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둘의 위치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다른 전시 섹션이었습니다.


다른 형태로 다른 공간에 같은 글이 중복됨으로서, 반복된다는 지루함 없이 더욱 머리에 잘 각인됩니다. 발견될 확률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하나를 잘 안보고 지나친 사람이 다른 하나는 흥미롭게 읽을 수도 있겠죠.



저도 이번 홀저 콘텐츠를 시작으로 차차 더 해나가려고 합니다. 지금 이 편지에 자세하게 적은 내용을 동영상과 함께 짧게 요약한 인스타그램 카드 뉴스를 만들어 업로드했고,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C7NkIuWsyF0/?igsh=eTg1eXFjajZnYWhj



오늘은 제가 다녀온 홀저 전시에서 얻은 콘텐츠 제작 팁을 정리해 공유해 보았습니다.


홀저같이 세계적인 미술가도 이런 참여 유도 전술에 신경을 쓰고 있고,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는 대신 현재의 트렌드와 관객들의 성향을 파악하여 전술을 업데이트 한다는 것이 무척 유의미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콘텐츠는 전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관객이 흥미있어 하는 것을, 재미있게 즐기도록 돕는 것. 그 과정의 감동을 마음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 인상적인 장면을 저장하게 하고, 주변과 그리고 세상과 공유하게 하는 것.


홀저는 갑자기 소셜 미디어 전술에 해박해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함께 계속 하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가인 것이구요.



“난 그냥 내가 올리고 싶은 거 올릴거야”, “막 유행 따라가고 주목받으려고 발버둥 치는 느낌 좀 없어보이지 않아?” 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무거나 만들어도 관객과 언론이 모일 홀저도 수십년간 관객의 관심과 참여도를 고민하는데, 그녀에 비하면 피래미인 우리들이 청중을 뒷전으로 두면 안되겠죠.


반드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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