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뜨개 옷을 자주 입는다. 심플한 메리야스 뜨기로 만든 풀오버, 화려한 아란 무늬로 이루어진 카디건, 코바늘로 만든 단아한 스커트와 같은 뜨개옷을 기분에 따라 꺼내어 입는다. 어떤 옷은 뜨는 것이 너무 어려웠지만 많은 것을 배워서, 어떤 옷은 누군가와 함께 떠서, 어떤 옷은 뜨는 동안에 일어난 특별한 일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그것들 각각은 그 나름대로 나에게 의미가 있다. 뜨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완성되는 작업이라서 가로세로 1cm 미만의 편물에 들어있는 바글바글, 옹기종기 모여있는 코 하나하나에도 나의 감정이 녹아있다. 그래서 뜨개옷을 입는 날은 그 옷의 의미와 뜨는 동안의 감정까지 함께 입는 느낌이다. 왠지 열심히 공부하며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학구적인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장면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뜨개 옷을 입는 것이 좋다. 감정과 역사가 각인된 옷, 멋지지 않은가?
내가 뜨개 옷을 입고 나가면 그것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친구가 묻는다.
"이런 옷 뜨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려?"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뜨개는 편물을 직접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이므로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업의 주된 과정이 원단을 재단해서 조립을 하는 양재와는 달리 뜨개는 한가닥의 실로 편물을 직접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친구도 묻는 것일 거다. ‘그 길고 긴 여정을 지나는 데에 성공하다니. 그런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니?’ 대답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뜨개의 난이도나 작품의 크기 또는 그것이 지닌 의미나 가치가 뜨개 속도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들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작품을 만드는 데에 들어간 시간은 모두 제각각이다. 크기가 손바닥만 하더라도 뜨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6개월이 될 수도 있고, 포대자루만큼 거대한 옷이라도 2주 만에 뜨개를 끝낼 때도 있다. 이는 뜨개에는 주관적인 속도 체계가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뜨개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요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번째 요인은 뜨는 시점과 사용할 시기의 간극의 차이이다. 그 간극은 좁을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예를 들어 내일 눈이 올 것 같아서 뜨개모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오늘 꼭 완성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겨울에 입을 스웨터를 한여름에 뜨고 있다면 아무리 예쁜 스웨터라고 해도 속도는 한없이 쳐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완성하면 옷장에서 자야 할 텐데 일찍 세상으로 나오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겨울이 끝나기 전 터틀넥 스웨터를 얼른 완성해서 입으려고 마음먹고 손에 모터를 달고 뜨개를 하는 중이다. 완성을 목전에 뒀는데 갑자기 봄이 되었다면, 완성할 의지가 꺾이고 그것의 완성은 1년 뒤가 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변속기가 작동을 하여 모터의 기능을 저감 시킨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뜨개 디자인과 뜨개 도구와의 교감이다. 나의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실과 바늘을 사용한다면 뜨개 속도는 엄청나게 빠를 것이다. 내가 꼭 사용하고 싶었지만 비싸서 살 엄두를 못 내던 아름다운 실을 손에 넣었을 때, 그리고 마침 그에 딱 어울리는 디자인의 작품을 발견하고 뜨개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뜨개 하는 손은 춤을 출 것이다. 즐겁고도 경쾌하다. 그러나 자꾸만 바늘에 걸리는, 부스러기 우수수 떨어지는 실을 처리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뜨고 있다면 자꾸만 뜨기를 포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에 뜨개가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나와 맞는 도구와 디자인을 만나서 즐기는 마음이 뜨개 속도에 미치는 영향은 참 크다.
앞서 말한 것들이 잘 갖추어져 뜨개 속도가 줄어드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이번에 제시하는 요건은 뜨개 작업 속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뜨개 속도는 완성작이 누구의 것인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가장 빠른 속도로 완성되는 것은 물론 내 옷이다. 내 옷은 빨리 입고 싶은 마음에 힘든 줄도 모르고 작업을 하게 된다. 심플한 디자인의 옷은 쉽게 뜰 수 있어서, 현란한 무늬가 가득한 옷은 긴장하며 뜨는 재미가 있어서, 크기가 작은 옷은 작아서, 크기가 큰 옷은 갈 길이 멀어 보이니 부지런히 떠야겠다는 마음에 서두르기 때문에 빨리 완성이 된다.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으로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인 남편의 옷을 뜨는 과정을 이야기해 보겠다.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만들더라도 내 옷을 만드는 데에 한 달이 걸린다면 남편 옷을 만드는 데에는 두세 달이 걸리곤 한다. 남편의 옷을 뜰 때는 뜨개 변속기가 여러 가지 이유로 수시로 작동한다. 물론 남편의 옷이 내 옷보다 크기가 큰 탓도 있지만(그렇지만 내 것보다 겨우 한 두 사이즈가 클 뿐이다) 매일의 남편에 대한 애정도에 따라 나의 속도가 들쭉날쭉하다. 남편이 나에게 친절한 어느 날은 몸판의 10cm가 별 어려움 없이 쑥 늘어나지만 나에게 잘못한 날에는 한단 올라가는 것도 어렵다. 편물의 한 코 한 코 나의 감정이 실린다. 애정도가 일정하지 않으니 왠지 남편 옷을 뜰 때면 어깨, 손목, 눈 등등 아픈 곳이 많은 것 같다. 조금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아이 옷의 경우는 속도를 내야 한다. 게으름을 부리다가는 훌쩍 커버린 아이에게 완성된 옷이 작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왜 아이 옷 뜰 때면 ‘조금만 서두르면 금방 완성될 거야’라는 생각에 게으름을 피우게 되는가. 결국 시간이 스르륵 흐르고 만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선물을 뜰 때는 대부분 마감기한이 잡힌다. 생일이라던가, 특별한 기념일이라던가. 이런 경우는 그 기한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그 노력이라는 것이 한 달이 남아 있으면 뜨는 데에 한 달이 걸리고 일주일이 남았으면 일주일이 걸리는 식이다. 그 날짜에 맞춘다.
얼마 전 인터넷 뜨개 카페에서 뜨개 속도로 언쟁을 하던 일이 있었다. 뜨개 옷을 만들 때 짧은 기간에는 절대 완성할 수 없다 vs 가능하다로 다투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가 2주 정도면 가능하다고 하자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소란스러워졌었다. 나의 경우 내 옷을 뜰 때에는 2주면 충분히 가능하다. 돌이켜보니 굵은 바늘로 심플한 디자인의 옷을 뜰 때 3~4일만으로도 가능했었다. 그러나 같은 옷이라도 남편 옷은 한 달이 걸려도 절대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이토록 뜨개 작품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속도가 현저히 차이가 난다.
이렇게도 나의 뜨개 속도는 일정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옷을 뜰 때 얼마나 시간이 걸리냐는 말에 ‘대충 한두 달쯤 걸려’라는 말로 얼버무리게 된다. 물론 sns를 보다 보면 이웃 중에 정말 놀라운 속도록 작품을 완성해 게시물을 올리는 지인들이 있다. 1달에 풀오버 두세 개를 뚝딱 완성하기도 하고 소품은 우수수 완성해서 나와 같은 뜨개인으로부터도 감탄을 자아낸다. 그런 분들은 뜨개 머신을 장착하고 있거나 뜨개 요정과 함께 사는 게 아닐까 의심해 보기도 한다.
나의 뜨개력은 너무나도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는 예민한 성격이라 속도를 어림잡아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아마도 뜨개를 좋아하고 뜨개에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대부분의 섬세한 뜨개인이라면 나와 같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자,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뜨개를 하는 내내 행복하게 2주 만에 완성한 작품, 1~2년 동안 지루함에 몸부림쳤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완성한 작품. 뜨개를 한 사람에게는 무엇이 더 소중할까. 뜨개 하는 과정에서 많은 감정들을 겪었지만 완성품을 바라보는 뜨개인의 마음은 똑같다. 뜨개 하는 동안 내내 머리와 마음을 채워주었던 작품이라 모두 다 소중하고 감격스럽다.
그러니 2주 만에 완성된 내 뜨개 풀오버도 사랑스럽지만 지루하게 1년을 끌어온 남편의 풀오버도 매우 값진 작품이다. 선물로 건네며 한마디 덧붙인다.
"나... 1년 동안 널 생각했어."
물론 어떤 생각들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사실 뜨개는 어떤 작품을 어떤 속도로 떠 가든 모두 즐겁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