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맥주 - 각성과 이완을 도와주는 나의 뜨개메이트

by 김범인

내가 뜨개를 하는 자리는 늘 두서없이 어질러져 있다. 실과 바늘, 도안 외에도 작업하는 편물의 사이사이에 끼워 둘 뜨개 마커, 여분의 바늘, 수정을 하기 위해 사용할 코바늘, 돗바늘 등등과 같은 뜨개 도구들을 늘어놓고 있고, 그 옆에는 간식이 놓여 있고, 그리고 커피 또는 맥주가 놓여있다. 학생 시절 공부를 시작하기 전, 책상의 면적과 각도를 고려해 물건의 위치를 정하고 열과 오를 맞춰 정리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나의 자세는 흐트러지고 테이블 위는 어지럽다. 내게 뜨개는 지루한 일상에 긴장감을, 경직된 마음에는 안정감을 주는 유연한 삶을 위한 행위라는 이유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나의 주변에 질서를 찾으려는 시도는 불필요한 수고이다. 나는 그저 즐기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다.


뜨개를 하려면 어떤 준비물이 필요할까? 실, 바늘, 뜨고자 하는 것의 도안 또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뜨개를 하기 위한 원재료가 되는 것들이니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 필요할까? 이것에 대한 답을 하려면 뜨개를 하는 것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일 뿐인가?'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 내게 그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결과물을 얻기 위한 여정이라면 나는 이 고된 길을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뜨개를 하는 수고를 들이지도, 높은 재료비를 감당하지 않아도 완성도 높은 공산품을 살 수 있는데 굳이 뜨개를 할 이유는 없다. 뜨개는 수십 가지의 객관적인 이유와 수만 가지 주관적인 이유를 갖고 있는 행위이므로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필요 요소들이 있다.


나의 뜨개 생활의 만족도를 높일 필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커피와 맥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오전의 뜨개는 새벽바람을 맞으며 조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조깅이 육체에 집중하는 활동이라면 뜨개는 정신에 집중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비슷하다. 아드레날린이 분출되어 하루를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운동처럼 오전의 뜨개는 내면의 근원적 활력을 충전하는 것과 같은 화학작용을 한다. 그러나 고요한 아침에 뜨개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슨해지는 나의 몸을 깨우기 위해서 커피의 각성 작용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침에 뜨개를 할 때면 내 앞에는 늘 커피가 있다. 커피의 카페인은 자칫 외면할 수 있는 육체의 감각을 일깨워준다. 이것은 내가 아침을 여는 하나의 화학요법과도 같다.

뜨개 친구와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커피는 우리의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커피라는 음료는 마치 신들이 마셨다던 넥타르와도 같을지 모른다. 향이 달콤하고 느슨한 분위기를 다소 향락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리고 하루 종일 뜨개 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그러니 커피와 함께 친구와 뜨개 하는 자리는 신들의 연회라고 느끼기도 한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난 후에도 커피잔에서 풍겨 나오는 커피 향이 좋아서 오랜 시간 뜨개를 하더라도 그 분위기는 지속될 수 있다.


저녁의 뜨개는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던 나에게 이완의 시간을 준다. 이때 내게 필요한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줄 맥주이다. 뜨개와 맥주의 조합은 치킨과 맥주의 조합만큼이나 잘 어울린다. 오전과는 반대로 뜨개는 정신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맥주는 육체의 이완을 돕는다.

여러 알코올음료 중에 왜 맥주를 즐기냐 하면 다른 음료보다 알코올 함량이 낮고 혼자서도 가볍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왠지 소주나 막걸리는 혼자서 마시고 싶지 않다. 와인이나 하이볼은 혼자서도 즐기지만 알코올 함량이 높아서 오랜 시간 취하지 않고 버틸 수가 없다. 뜨개는 단숨에 끝내버릴 수 있는 작업이 아닌데 말이다. 취기가 올라오게 되면 뜨개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실수가 발견되어 그동안 해 온 작업물을 다 풀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곤 ’ 음주 뜨개는 위험해 ‘ 라며 후회하는 뜨개인들이 종종 있다.

저녁 뜨개를 할 때에는 맥주와 함께 드라마도 즐겨보곤 한다. 알코올의 이완 효과와 반복적인 뜨개 작업으로 몸과 마음의 자세가 느슨해지면 공감능력이 한없이 상승한다. 이때 드라마의 스토리가 다가오면 완벽하게 빠져들어 버린다. 물론 손으로는 뜨개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뜨개 작품에 추억처럼 드라마의 스토리가 입혀진 적도 많다.


나의 인생에서 커피와 맥주를 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뜨개 인생에서도 커피와 맥주를 뺄 수는 없다. 이것들이 나의 뜨개 생활과 늘 함께해왔고 지금도 뜨개의 즐거움을 극대화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너무도 상반된 성격의 커피와 맥주는 나의 몸과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나에게 흥미진진한 뜨개 세상을 즐기게 해 준다.

그러나 내게 가장 중요하고 좋은 뜨개 메이트는 나와 함께 뜨개를 하고 있는 친구이다. 각자의 뜨개에 집중하면서 가끔은 숨이 넘어갈 듯 웃기도 하고, 가끔은 심각할 정도로 진지하게 대화하고, 가끔은 그냥 침묵하지만 그것이 편안한, 뜨개 친구이다.

그리고 장담하는 데 뜨개 친구와 뜨개를 하는 자리엔 늘 커피 또는 맥주도 함께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16화나의 뜨개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