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뜨개를 시작했을 때는 뜨개 책을 보거나 인터넷 세상에서 만나는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의 뜨개 작품들을 보며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어떻게 저런 현란한 무늬를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이런 작품은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는 예술인의 손에서만 탄생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것은 나는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소수의 사람만 가능한 일이라고 넘겨짚곤 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뜨개를 해오다 보니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뜨개 편물만 보아도 그것이 어떻게 뜬 것인지 감이 오게 되었다. 복잡한 패턴으로 보이더라도 대부분은 겉뜨기와 안뜨기를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약간의 테크닉만 보태어주면 온갖 무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각각의 스티치를 조합하고 변형하고 응용하여 만든 패턴, 그리고 그 패턴들을 조화롭게 배열하는 것. 그것을 알아가는 것은 일정한 반복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을 발굴하는 일이었고, 창조하는 일이었고, 감동하는 일이었다.
스티치 패턴(stitch pattern)이란 뜨개 코가 일정한 규칙으로 배열되어 반복되는 모양이 나오는 것을 말한다. 패턴에 따라 완성된 편물로 보았을 때는 그 자체로 단일해 보이고 부분을 나누어 생각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 패턴이란 결국 코와 코가 만나고, 단과 단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고, 전체의 특성은 부분과 부분의 조화에서 규정지어진다. 이것은 마치 사람 사는 세상과 똑같다. 뜨개를 사회로 비교하자면 일정한 규칙을 갖고 있는 뜨개 패턴들은 공동체의 색깔을 규정하는 특성들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각각의 코들은 그 공동체 안의 개인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옷을 뜨기 좋아하는 나는 대바늘 뜨개의 기본적인 스티치를 사람들과의 관계를 연관 지어 설명해 보려고 한다.
메리야스 뜨기(stocking stitch)
우리가 흔히 보고 입는 옷들이 이 패턴인 경우가 많은데, 메리야스 뜨기를 한 편물의 겉면을 보면 땋은 머리 모양의 무늬가 쪼르륵 줄지어 서있다. 겉면은 겉뜨기, 뒤집어서 뒷면을 뜰 때는 안뜨기로 뜬다. 이렇게 되면 겉면은 머리 땋은 모양의 겉뜨기로만 이루어진 무늬가 되는 것이다. 한국어로 말할 때는 '메리야스 뜨기'이고 영문 표기는 '스타킹 스티치(stocking stitch)'이다. '메리야스 뜨기'라고 말하면 아빠가 입던 난닝구가 생각나고 '스타킹 스티치'라고 말하면 여성의 스타킹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렇게 다른 느낌의 단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스타킹도 난닝구도 옷의 안쪽에 입는, 다른 의복의 매력을 돋보이게도 하고 격식을 차릴 수 있도록 밑바탕이 되어주기도 하는 아이템이다.
'메리야스 뜨기'도 그렇다. 뜨기도 편하지만 단순하면서도 매끈한 표면을 가진 메리야스 뜨기의 편물은 베이직하고도 심플한 멋을 품는다. 이는 마치 단순하지만 나름의 원칙이 있는 사람, 내게 편안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더라도 심신이 이완됨을 느낀다. 겉과 속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 속에서 상처 받고 지쳐있던 나는 메리야스 뜨기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두꺼운 외투를 벗고 자신만의 온기로 나를 대하려는 따뜻함을 발견하곤 한다.
가터 뜨기(garter stitch)
편물의 겉면과 안쪽면 모두에서 겉뜨기로만 뜨는 방식이다. 이랑과 고랑과도 같은 줄무늬가 생기게 되는데 이 요철로 인한 입체성은 도톰하고 묵직한 느낌의 편물을 만들어 낸다. 세로로는 신축성이 있어서 늘어나지만 가로로는 신축성이 별로 없다. 겉뜨기만 뜨는 것이기 때문에 뜨개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뜨개를 하면 할수록 가터 뜨기가 간편한 뜨개 법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요철 모양의 특성 때문인지 뜨는 속도에 비해 편물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이 더디고, 바늘에 걸려있는 실의 방향은 바늘을 찌르는 방향과 달라서 손에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가터 뜨기'는 다가가기 쉽고 편하지만 함께 지낼수록 어려워지는 사람과도 같다. 겉뜨기로만 진행된다고 아무 마음의 준비 없이 시작한 '가터 뜨기'가 더디게 길어지듯이 가터 뜨기 와도 같은 사람은 내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가로로 늘어나지 않는 완고함을 갖은 듯하지만 세로로 늘어나는 유연함을 감추고 있으므로 츤데레적인,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숨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래 함께하고 싶은 '가터 뜨기'와도 같은 사람을 대할 때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할지라도 어려울 것은 없다. 나는 그냥 처음 마음가짐처럼 '겉뜨기'만 떠도 되는 스티치야, 이것은 '처음 마음가짐대로 이 사람을 대하면 되는거야'라고 생각하면 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게 그 사람의 매력이다.
멍석 뜨기(moss stitch)
'멍석'이라는 단어에서 감지되는 안정감이 있다. '멍석 뜨기'는 마치 무언가의 베이스가 되는 뜨개 패턴으로 느껴진다. 만약 '멍석 뜨기'로 브라운 계통의 실로 큼직하게 떠서 바닥에 깔아놓는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그 '멍석'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겉뜨기와 안뜨기를 번갈아 뜨면서 상하좌우가 모두 교차된 스티치가 위치하고 이것은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멍석이라고 해서 투박한 편물일 것이라고만 상상하면 안 된다. 교차된 스티치의 반복으로 인해 생긴 코들의 사선 행렬은 가지런하게 정돈된 마음을 갖게 하고 올록볼록 올라온 무늬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닮아 설렘을 느끼게 한다. '멍석 뜨기'만으로도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매력은 다른 현란한 무늬들의 사이에 배열해 안정감과 정돈됨을 꾀할 수도 있는 조정과 안정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멍석 뜨기'는 멋을 부리지 않았는데 고유의 개성을 갖고 있는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세련된 옷이나 액세서리를 착용한 것도 아니고 메이크업을 화려하게 한 것도 아니지만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는 조직의 중재자를 맡은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참 차밍한 사람이 아닐수 없다.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그 존재가 빛이 나는, 나는 이런 사람이 참 부럽다.
고무 뜨기(rib stitch)
옷을 만들 때 또는 장갑이나 양말과 같은 액세서리를 만들 때, 대부분 밑단에 사용하는 스티치 패턴이다. 겉뜨기와 안뜨기를 규칙적으로 배열하여 가로로 신축성 있고 가장자리가 말리지 않는 편물을 만들어낸다. 그 신축성으로 인해 안뜨기는 겉뜨기 사이에서 오므라들게 되는데 사용할 때 늘어났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탄성은 그 물건을 사용하는 데에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면서 내가 그것을 변화시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주게 한다.
이것은 마치 포용력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 느끼는 편안함과도 같다. 그 사람이 나에게 맞춰주고 있지만 결코 그 사람의 특성이 변화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것이 나에게 평안함을 주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기대고 있고 위로 받고 있지만 나로 인해 그 사람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은 그 자체로 나를 향한 강한 지지가 되는 것이다.
케이블 스티치
케이블 스티치(cable stitch)는 일정한 콧수와 단수를 채우면 코의 위치를 꼬아 마치 꽈배기와도 같은 무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우리는 이것을 '꽈배기 무늬'라고 부른다. '케이블스티치'는 꼬는 콧수에 따라 작게도 크게도 무늬를 만들수 있다. 동일한 콧수를 꼬아서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콧수의 차이가 있는 꼬임을 만들어서 독특함을 만들기도 하고, 꼬임의 배열을 자유롭게 해서 화려한 무늬를 만들기도 한다. 이 무늬는 왠지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주기도 하고 눈에 띄는 겉모습으로 부담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떠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려울 것 같지만 알고보면 일정한 규칙과 배열을 유지하기 때문에 일정한 무늬의 반복이 눈에 익으면 오히려 뜨기 편하고 지루함이 없다.
이것은 마치 꼬여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사람, 그와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처음 다가감의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나에 대한 동일한 따뜻함과 정겨움을 주는 사람과도 같다. 또한 꼬임의 규칙에 따라 내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유쾌함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뜨는 스티치들이 만드는 편물은 결국 옷이 되고 모자가 되고 장갑이 되어 버린다. 각자의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빛내고 제각각의 역할을 하는 스티치 패턴을 연습하고 분석해 보는 것은 재미 있다. 내가 만든 뜨개 작품은 곧 내가 만든 세계이고 그것을 구성하는 스티치 패턴들은 의미를 가진 요소들이다. 코와 코, 단과 단이 쌓이는 것은 관계의 얽힘이고 그것 자체로 제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스티치 패턴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특성을 연결짓다니 너무 억지스럽다고 느끼는가? 그래도 어쩔수 없다. 난 늘 뜨개 속에서 세상을 만나고 세상 속의 여러 관계들을 찾아내는 뜨개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