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내면을 들여다봤니? 손뜨개와 내면의 상호작용

by 김범인

얼마 전 인간관계에서 오는 속상함이 있었다. 몇 마디 말과 배려에 대한 서운함이었고 어쩌면 쉽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버리면 나는 왠지 가진 것이 없이 초라해질 것 같아서 속으로 끙끙 앓았다. 큰소리를 내서 따져 묻기엔 관계를 정리할 만한 배포도 없었고, 혼자 묵묵히 나만의 길을 가기엔 두려움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조용히,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당시의 나에겐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고, 관계에서 튕겨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다. 사소한 일에서 발화된 것일지라도 그것에 무게를 싣는 순간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궤도에 진입하는 것과도 같다. 이것은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의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내 존재가 입체성을 잃고 납작해지고 사소해지는 듯한 기분에 맥주를 마셨다. 잠시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또다시 그 기분이 살아났다.


복잡한 기분에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식탁 한 귀퉁이에 놓여있던 뜨개를 잡았다. 그 기분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습관적으로 눈앞의 뜨개 거리들을 잡은 것이다. 중력에 이끌리듯 손에 잡은 실과 바늘. 나의 손은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참 신기할 따름이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는 일방적으로 나에게 주입되는 소리나 영상도 스트레스다. t.v. 도 라디오도 싫다. 누군가와의 만남도 피하고 싶고 다른 무엇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 그런데 뜨개만은 예외다. 아무 생각 없이 뜨개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상태에서도 내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런 기분인데도 뜨개가 된다고?


뜨개를 하는 그 순간은 나의 감정과 현재의 상태를 초월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명상을 잘 모르지만 아마도 뜨개를 하는 시간이 내게 그것과도 같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나의 손이 이끄는 대로 엮이고 꼬이는 실과 바늘을 보면서 나의 생각은 분류되고 정리가 되어간다. 엉켜있던 생각들이 풀리고 고르게 제 자리를 찾아가며 나를 사로잡고 있던 수만 가지 감정들의 강력한 손아귀로부터 풀려나는 기분이 든다. 참 우습기도 하지, 손으로는 열심히 엮고, 짜고, 꼬고 있으면서 머릿속의 생각은 하염없이 풀어내고 비워내고 있으니. 상반된 상황이지만 이보다 더 조화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뜨개는 단순히 실과 바늘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뜨개를 하는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동안의 나의 감정과 생각이 뜨개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도 포함한다. 기분이 좋은 날에 고른 실은 파스텔톤이고 우울한 날에 고른 실은 뉴트럴 톤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뜨개를 하는 날의 편물은 어딘지 모르게 느슨한 느낌으로 떠지고 시간에 쫓기는 날의 편물은 그때의 조급함을 살펴보라는 듯 촘촘하고 짱짱하게 떠지기도 한다. 술을 마신 날의 손놀림은 춤을 추지만, 그날의 황홀함을 반영하듯 편물은 들쑥날쑥 고르지 않기도 하다. 나와 나의 내면, 그리고 뜨개라는 이 행위는 서로에게 이토록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감정을 뜨개라는 행위에 담으며 나를 추스르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뜨개는 나의 물리적 행위뿐 아니라 나의 감정이라는 영역까지도 보듬어 편물이라는 실존적 객체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뜨개로 만든 작품은 그때의 나의 시간을 담는다. 미완성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실이라는 존재는 나의 손에 의해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으로 완성된다.


내가 뜨개를 하며 마음의 평온해지는 것은 매달리고 있던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손에 잡고 있는 긴 실을 엮어가며 내 안에 품은 감정의 실타래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함께 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덧 손에서 뜨고 있던 편물들은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가지런하고 아름답게 자라난다. 나의 감정은 이렇게 내 손에서 정돈되고 있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우울함도. 뜨개를 하며 나의 기분이나 걱정들은 눈에 보이는 편물이 되어 내게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 내가 이렇게 뜨개를 하는 것은 드러내지 못한 나의 감정의 표현이고 설명하지 못했던 내 생각의 해석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렇게 물성을 가진 것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즐거운 날은 왈츠를 추듯 경쾌하게 뜨개를 하고 우울한 날은 비 오는 오후에 듣는 피아노 연주처럼 뜨개를 한다. 특히 담백해지고 드라이한 세련된 삶을 꿈꾸는 내가 물에 젖은 수건처럼 납작하고 축축해질 정도로 우울해질 때면 소파에 푹 꺼지듯 앉아 뜨개 거리를 주섬주섬 꺼낸다. 뜨개를 알아 사랑에 빠져서 다행이다. 나를 위로하고 나의 세계를 해석하는 뜨개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 글을 마치면 또 뜨개를 해야지. 오늘도 행복할 것 같다.


참, 지나고 보니 한동안 나의 마음을 헤집었던 그때의 그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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