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쉼 수필]

by stamping ink

몇몇 크고 작은 대회에서 글을 인정받기 시작했을 즈음, 라디오 방송국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다.

음성만 나가는 것이니 떨릴 일도 없을 것이고 내 글의 한 꼭지를 성우가 낭독해 준다는 것영광스럽기도 하여 흔쾌히 승낙했다.


오픈 방송으로 제작진 포함해서 백여 명이 모여있는 작은 소공연장으로 초대를 받았다.

왕년에는 라는 단어가 떠오르지만 첫 소절만 들으면 기억나는 가수가 나와 축하공연도 해주었고 초청받아 온 악단의 화려한 음색이 소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사전에 진행요원이 짜인 질문을 알려주었기에 암기하듯이 답변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준비된 공연이 끝나자 아나운서의 위트 있는 입담이 이어져갔다.

진행요원이 가져다준 마이크가 손에 쥐어지는 순간, 정리해 둔 머릿속 이야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유로운 마음은 사라지고 조여오듯 긴장감에 손바닥에 땀이 솟구쳤다. 나의 순서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자 그다음부터 그 자리를 더 이상 즐길 수 없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오늘 초대 손님이 늦으셔서 선생님께 질문 분량이 좀 늘어날 거예요."

진행요원의 귓속말은 단어로 쪼개져 들렸다.

질문, 분량...


연예인의 화려한 퇴장 이후,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가 나의 글의 한 꼭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대했던 순간이었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의 순간이 다가왔다.


마이크는 켜진 걸까? 쇳소리가 나면 어쩌지? 심장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닐까?


나의 마음속의 진동을 느꼈는지 노련한 아나운서는 나에게 예정된 질문부터 천천히 던져왔다.

이미 방송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연습해 오던 답변인지라 수백 번 입 밖으로 내뻗은 말이 머리를 통과히지 않고 쏟아졌다.

호흡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아나운서가 더 많은 이야기로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니 나에게도 안정을 찾아갔다.


"이런 급작스런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십니까?"

시간 채우기용 예정 없는 질문에 머리가 멈추었다.

막연하게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이 아나운서의 입에서 나왔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을 때 행복한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앞선 마음에 장황한 설명 대신 짧은 말 한마디를 남겼다.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글을 나누는 이가 되고 싶습니다."


사춘기 아이처럼 글 쓰기 마음이 어지러운 날.

그 마음을 다시 떠올린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작은 구르터기가 되어 글 쉼터 지킴이가 되려 마음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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