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러미 손톱

발급번호-045

by stamping ink

지인이 말했다.

강한 파도를 겪고 나서야 잔잔하고 넓은 바다를 볼 수 있다.

어려운 시기를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을 응원하는 말이라 했다.


두려움을 즐기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시험이라는 단어를 즐긴다고 했다.

긴장감이 주는 심장의 두근댐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했다.

하지만 개복치와 같은 심장을 지닌 이에게는 그런 도전이 무모하리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명약이 될 때도 독약이 될 수 있다.


한 아이가 엄마와 함께 사무실 밖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사무실을 밀고 들어오리란 것을 직감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잠시 비운 자리에 다시 정비를 하고 모자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건 네가 필요한 서류야, 그러니까 네가 선생님께 말해야지."

민원신청서 작성을 위해 만들어 둔 테이블에 손도 닿지 않는 저학년 아이를 엄마는 내 쪽으로 밀었다.

어린 나이에 싫은 얼굴이 눈에 보였지만 아이 엄마도 지지 않았다.

두려움을 담은 눈을 가진 아이는 내게 말해다.

"재학증명서가 필요해서 왔어요."

어린 나이에 재학이라는 한자어의 의미를 알고 말하는 것일지 의문을 갖으며 신청서를 아이 엄마에게 내밀었다.

필기구가 보이지 않아 비치되어 있는 볼펜을 전달하니 엄마는 아이의 손에 볼펜을 쥐어주었다.

"자 여기 여기에 써봐."

엄마는 매일 반복되는 젓가락 사용법을 알려주듯 내일도 모레도 와서 신청할 것처럼 서류 작성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자니 엄마도 작성하는 방법이 틀렸다.

아이 앞에서 엄마에게 잘못 기입하고 있음을 알려줄 수 없기에 신청서를 아이손을 통해 전달했을 때 다시 새로운 용지를 아이 엄마에게 전달했다.


"어머니, 아직 아이가 미성년이기 때문에 보호자께서 작성해 주셔야 합니다. 여기 대리인 칸까지 기입 부탁드립니다."

어어롤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쓰게 한 용지를 엄마가 대신 이어받아 작성을 시작했다.

아이 엄마가 신청서를 마저 작성하는 동안 옆에 서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아이 열 손가락 손톱 위로 올라온 거스러미들...

무의식적으로 뜯어내는 모습이 고치려 애를 써도 초조할 때 나타나는 나의 예전 버릇과 똑 닮았다.

장애가 있는 나에게 스스로 해야 한다고 몰아쳐 가르쳤던 이들의 마음이 떠올랐다.

그들이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며 처방한 약들은 나에게 독약이 되기도 도움을 주며 마음에 품고 사는 명약이 되기도 했었다.

인생이라는 수많은 파도를 건너가며 살아갈 때, 너울 앞에서 용기 있게 넘어서며 자라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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