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수빈은 홀로 짐을 정리하며 기숙사에서의 낯선 첫날 저녁을 보냈다.
한동안 꾸지 않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 꿈속에 나타났다.
웃는 모습이 빛나는 햇살 같은 아이였다.
어린 부부에게 찾아온 소중한 아이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아이가 주는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부모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의 성패는 노력과 실력이라 하지만 보이지 않는 운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엄마의 사업은 승승장구를 거듭했지만, 아빠는 사업 운이 따르지 않아 실패와 위기가 계속되었다.
부부는 서로 바쁨의 이유가 달라졌다.
그들에게 행복이 한 쥠밖에 남지 않았을 때 잠들어 있던 어린 수빈은 엄마의 격양된 목소리에 눈을 떴다.
거실에 소리 지르는 엄마와 맞서 소리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두려움에 아빠에게 안기려 달려갔다.
하지만 수빈을 보지 못한 아빠의 팔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수빈을 밀쳐버렸다.
어린 수빈은 허공을 날아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뒹굴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던 수빈을 위해 이사한 단독주택 이층 집 계단을 수빈은 굴러 떨어졌다.
놀란 부모는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어린 수빈은 소리를 빼앗겨 버렸다.
곪아가던 감정을 간신히 덮어두던 껍질이 찢겨나갔다.
그 후로 수빈의 일까지 더해져 더 많은 다툼은 격앙되었다.
수빈은 입을 벌리고 소리쳤지만 그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귀를 원망했다.
귀를 찢어내려 힘껏 뜯었다.
핏물이 눈물과 섞여 얼굴을 타고 흘렀다.
“미어... 미어...”
그 후로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아빠의 손을 잡고 찢어진 귀를 치료하러 병원에 다녔다.
상처를 봉합하던 날, 아빠는 주머니를 뒤져 작은 물건을 수빈의 손에 올려놓았다.
붉은 체리 모양 귀걸이가 수빈의 손에서 반짝이며 빛이 났다.
“귀 뚫을 때쯤에 이거 꼭 끼고 아빠 보여줘야 해.”
이것이 수빈이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수빈은 닫힌 귀와 함께 자신의 입도 닫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