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영숙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쪼그려 앉아있는 수빈을 보노라니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깊은 한숨과 섞인 애달픔이 입에서 물밀듯이 쏟아졌다.
“그래. 난 불쌍한 년이야. 겨우 열다섯 살에 동네에 낯선 난봉꾼에게 끌려 겁탈당했지. 그리고 애가 들어섰다. 지우고 싶었지. 어른들 아시면 경칠 일이거든. 그 썩을 놈이 잘못한 것이 아니고 몸단속 하나 못하는 내가 잘못한 일이 되어버릴 테니까.”
넋두리하던 영숙은 문득 수빈이 알아들어버릴까 잠시 말을 멈추었다.
영숙의 걱정과는 달리 수빈은 보청기를 찾으려 흙바닥에만 모든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래. 너는 안 들리니 내 속을 내보여볼까? 열다섯에 아이를 품고 지우려고 양잿물을 먹고 동네 뒷산을 그리 굴렀어. 아이가 죽길 바라면서. 그런데 목숨이 질기기도 하지 그것이 태어나더라고. 난 부모한테 죽을 만큼 맞았다. 집을 나가라 등 떠미는 걸 버티고 버텨 용서를 구했어. 내 잘못도 아니었는데... 동네에 내 행실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아들과 나는 바르게 살았어. 근데 하필 내가 배에 품었을 때 죽어라 죽어라 해서 그런지 간질이 갖고 태어났지. 고칠 방법이 없었어. 그땐 병원도 약도 흔치 않았지만 난 돈도 없었거든. 어느 날 그 녀석이 옥상에서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간질을 한 거야. 염병할 간질 같으니...”
“어머니. 정우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오랜만에 듣는 거 같아요.”
“아이코, 깜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