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암호

23. --<>--

암호

by stamping ink

어느새 책상 전등의 불빛만 남겨지고 어둠이 빗물과 함께 찾아왔다.

수빈은 엄마의 말이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려서 실수하거나 잘못인지도 모를 일이 벌어지면 엄마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다.


수빈은 책상 서랍을 열어 10대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있는 귀여운 커터 칼을 쥐었다.

왼손에 차고 있던 시곗줄을 풀고 나니 작고 희미한 선들이 수빈을 반겼다.

작은 칼날을 뽑아 선을 하나 더 새겨 그었다.

칼날이 지나간 길 따라 잠시 후 붉은 방울이 하나 둘 맺혀 올라왔다.

용기 없는 자신의 모습에 수빈은 손목을 칼날을 잡고 속으로 쉴 새 없이 흐느꼈다.

수빈 대신 빗물이 소리 내어 울어주는 밤이었다.


오지 않길 바란 아침은 도돌이표처럼 돌아왔다.

부은 눈과 피딱지가 엉겨 붙은 손목을 보며 수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은 영숙에게 한글을 가르쳐야 하지만 이 모습으로 나가려니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밤새 내리던 비는 여전히 하늘에서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고 싶었지만 교장의 추천서가 떠올랐다.

내키지 않는 몸을 이끌고 기숙사 건물 통로를 따라 빗물을 피해 당직실의 문을 열었다.


"야야. 비 온다고 안 오려고 했냐?"

농담처럼 던진 말에 배시시 웃거나,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 방방 뛰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수빈이 아무 반응이 없자 영숙은 뻘쭘해졌다.

괜스레 수빈이 묻혀온 빗방울을 툭툭 쳐서 바닥에 떨구다가 갑자기 영숙이 손을 멈췄다.


“야야... 니 팔에 뭐가 흐르는 거 같은데? 뭐여... 피 아냐?”

수빈의 왼팔을 잡아채자 교재가 바닥에 흩날렸다.

“뭐여? 피 맞네. 피 맞아.”

잡아 빼려 수빈이 팔목을 돌렸지만, 영숙의 힘을 이기진 못했다.

놓으라고 수빈은 고개를 세차게 저어댔지만 영숙의 손목에는 힘이 더 가해질 뿐이었다.

빗물을 머금은 붉은 시곗줄이 수빈의 팔목을 졸랐는지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격한 저항에도 영숙은 기어이 수빈의 시계를 풀어냈다.

여러 줄의 낙인 같은 상처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여. 이게 뭐여?”

수빈은 영숙을 노려보았고 영숙도 사납게 수빈을 쏘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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