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섶(2/6)

[쉼 소설]

by stamping ink

2. 기차


평일이라 열차 승객들이 뜨문뜨문 객실 안을 채웠다. 자리를 찾아 앉은 민의 모습은 설레어 있는 여행객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불과 아침의 민은 집안 정리를 하다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부신 햇살은 민을 이끌고 기차 안에 태워 놓았다.

한 시간 전 민은 눈부신 햇살에 이끌리어 홀린 듯 집을 나섰다. 유혹하는 햇살이 두고 떠나갈 것만 같아서 급히 손에 집히는 데로 잡아들고 아파트 단지를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목적지를 묻는 기사에게 민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서울역이요.”


짧은 정적을 틈타 말수 적어 보이는 농염한 택시기사는 민을 룸미러로 스치듯 바라보았다. 이내 기사는 대답 대신 핸들을 틀어 속도를 올렸다. 대화 없는 조용한 택시 안은 손님을 위한 배려처럼 라디오 주파수를 찾아 소리를 높여주었다. 출근시간이 비껴지나 가 버린, 조금은 한가해진 도시를 가로지르는 택시 속에서 민은 눈부신 창밖을 보다가 쥐고 있던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민은 눈을 찡그렸다. 너무 밝은 빛이 들어와 휴대폰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 화면 밝기를 이리저리 만져 최대한 밝은 화면으로 바꾸고 나서야 내리쬐는 햇살을 이겨내고 휴대폰 화면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남편과 딸아이의 번호를 찾기 위해 휴대폰을 조금 더 뒤로 밀어내고 나서야 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


‘오늘 조금 늦을 거야. 여행 좀 다녀올게.’

기차역에 도착하고 깨끗하고 넓은 대합실에서 전광판에 적혀 올라가는 시간표를 보곤 제일 빨리 출발할 수 있는 기차표를 끊고 나서도, 바로 탑승을 해야 한다는 말에 열차번호와 플랫폼을 번갈아 가며 숫자를 찾을 때도, 열차에 올라 손에 쥐어진 자리의 숫자와 좌석 위 적혀 있는 숫자를 맞춰 자리를 앉을 때까지도 아무에게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좁은 통로를 지나 정신없이 기차에 올라 자리를 앉고 나니 민의 자리는 역방향 자리였다. 좌석의 아래를 보니 회전을 할 수 있는 좌석이라 마주 앉을 사람들이 오기 전에 자리를 돌려보려 일어섰다. 몸을 움직이려던 찰나 혹시 나보다 먼저 이 자리에 온 누군가 필요해서 돌려놓은 좌석일까 싶어서 마주 앉을 사람이 오면 양해를 구하고 돌려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민을 스쳐 지나가며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좌석이 역방향이었지만 다행히도 창가 쪽 자리였다. 기차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내게 주어진 자리에 온전히 비추어 동그란 원처럼 비추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보니 햇살이 강해 커튼을 치려다 눈을 감고 햇살을 얼굴 가득 받으며 착잡했던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기차가 잠시 덜컹하더니 이내 자신의 일을 하려 기차 바퀴가 기차 레일 위로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소리에 잠시 눈을 떴는데 햇살을 받은 눈은 금세 제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까만 점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는 반대편 입구에서 좌석 위에 자신들이 원하는 작은 글씨들을 찾아 도릿거리며 들어오는 세 여자가 어느새 민의 자리 앞에 섰다.

“31A 좌석이시죠? 저희가 옆자리인데 저희가 동행인들이라 이렇게 넷이 마주 보고 갈까 하는데요. 괜찮으시죠?”

중년에게 유행하는 단발머리의 동글동글한 펌을 한 A가 민에게 양해인지 강요인지 모르게 들큰거리며 말을 건넸다. 민이 잠시 주저하자 명품 로고가 박힌 선글라스를 낀 B가 A를 밀쳐내고 말을 했다.

“야. 너는 예의 없이 그렇게 말하고 그러니? 죄송해요. 얘가 말투 땜에 오해를 자주 받아요. 이 좌석 배치대로 출발해도 될까요? 마주 보는 게 불편하시면 저희가 의자를 돌려 앉아있어도 되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세요. 어차피 전주까지는 1시간 40분이면 도착하니 저희도 조용히 가도 되거든요.”

제일 수다스러워 보이는 B는 민에게 넉살 좋게 말을 붙였다. 민은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조금 불편하면 되고 기차를 타고 가는 목적도 없기 때문에 출발과 동시에 잠이나 청하려 하던 참이었다.

“전 아무래도 괜찮아요.”


민의 승낙에 셋은 하나씩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C가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 두며 민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민의 가방과 같은 브랜드 가방이 C의 무릎 위에 올려 져 있었다. 가방을 쥐고 있는 C는 민의 눈길을 느꼈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고민해서 샀는데 저에겐 너무 과분한 거 같아 후회가 돼요.”

“야. 너 평생에 하나 산거 가지고 그리 벌벌 떨고 그러냐? 죽을 때까지 몇 개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데 갖고 싶으면 사야지. 우리 나이에 짝퉁 들고 다니는 것도 웃기고...”

의자에 몸을 편히 넣으려 움직이며 던지는 B의 말에 민은 바닥에 내려두었던 자신의 가방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의자 밑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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