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섶(4/6)

[쉼 소설]

by stamping ink

4. B


불혹의 나이가 되면 모든 일에 절제와 자제를 할 수 있는 때라 했는데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었다. A와 B의 언쟁에서 민은 자신 역시도 불혹이란 단어에 어울리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잠시 침묵이 넷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빠르게 지나치는 창밖을 바라보는 A와 휴대폰 화면을 눌러 관심도 없는 화면에 눈길을 주는 B와 그들이 눈치채고 있는 걸 알면서도 눈을 내리깔고 그녀들을 바라보는 C...


민은 냉랭해진 분위기에 헛기침이 자꾸 올라왔다. 휴대폰에서 눈을 뗀 B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내가 갑자기 너희에게 여행을 가자고 말한 건,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어. 우린 친구니까...”

친구라는 단어에 마음이 열렸는지 A는 관심이 조금쯤은 있다는 표정으로 B를 바라보았다. A가 귀엽다는 표정으로 흘겨보곤 B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를 낳으면 빚쟁이가 된다더니, 요즘 수아가 딱 그 모양이야. 이것 하다 그만두고 저거 하다가 그만두고 하더니 이젠 음악을 한다나? 팀파니를 배우겠다고 하더라. 뭐라더라? 거긴 대학을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집어 들었는지 그걸 배운다고 하더라고. 공부도 안 하는데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무리해서 레슨을 시켜줬지. 그랬더니 팀파니를 사야 한다고 하더라. 그거 얼만 줄 알아? 천만 원이라고 천만 원...”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B의 말에 따 놓은 맥주 캔을 A가 무심한 듯 밀어 챙겨주었다. 비스듬히 고개를 돌린 B는 마주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걸 느끼곤 다시 말을 이었다.


“알지? 피아노 배운다고 해서 피아노 사줬는데 먼지 쌓여 있는 거... 근데 이 악기는 다르더라. 무리했거든. 레슨비가 장난이 아니더라고. 예술 시키면 기둥뿌리 뽑힌다는 말 이제 알겠더라. 뱁새인데 황새 흉내를 내니 무리가 가서 학원에서 파는 것이나 중고로 사는 건 어떠냐고 아이를 달랬지. 그랬더니 딸 하나 있는데 이제 1년 남은 자신을 위해 투자 못 해주냐며 서럽다고 울더라. 기가 막히지?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설거지하러 나갈 사람은 A가 아니고 나라고.”


B는 반짝이는 파츠가 달린 손가락 사이로 눈물을 흘렸다. 요술 가방처럼 가방을 열어 휴지를 꺼낸 C는 몇 장을 뽑아 B에게 건넸다. 눈물을 찍고 코를 힘껏 풀어버린 B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 번지지도 않은 눈 아래 꺼풀을 훑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마음이 심란하던 참에 동네 네일 숍 오픈한 게 보이더라. 우리 동네 와 봐서 알지? 무리해서 이사한 신도시라 모든 비싸더라. 세일이라는데 글쎄 10만 원이래. 그 돈이면 아파트 대출금 이자 낼 돈을 보태는 것이 나은데... 이 번쩍이는 파츠란 것이 원래는 개당 만 원이라데? 이미 매니큐어는 발리고 있고 중간에 나올 수가 없더라고. 미리 가격을 물어보고 시작했을 것을... 평생 처음 화려한 네일아트를 받았는데 영 내 손가락 같지 않아서 불편해. 떼버리기엔 아깝고...”


“예쁜데... 너랑 잘 어울려.”


위로 섞인 말을 C와 민은 번갈아 건넸고, A는 눈물로 찢겨 붙어버린 휴지 조각을 B의 얼굴에서 떼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은 이들과 동행하는 여행자가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잠시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있던 네 개의 맥주 캔들이 허공 위에서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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