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소설]
- 셋째 -
아버지는 엄마가 떠난 이후로 시골에 혼자 살아간 지 벌써 두 해가 지나갔다. 큰 오빠나 둘째 오빠는 살기 바쁘고 멀다는 그들만의 핑계 같은 사연을 끄집어내어 한해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아들, 아들 하더니만...’
시골 여느 집과 다를 바는 없었다. 아들은 집안의 대를 잊고 아들만 귀히 여기던 시대에 아들 둘 이후 태어난 나였지만 반가워하지 않았단다. 하나라도 더 아들을 낳아서 형제끼리 집안을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는데 두 번째까지 원하는 데로 태어나주었는데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낳아보자 낳은 것이 딸년이라 여간 섭섭함이 없지 않았다 한다.
나름 시골 지주의 집안이었다. 대대로 농사를 지어 살아가긴 했어도 소작농도 부리고 집에서 일하며 돕는 일꾼도 여럿 되었다. 훌륭한 학자를 많이 배풀하던 동네지만 입에 거미줄 치며 살아가는 집보다 삼시 쌀밥을 집안 일꾼까지 베푸는 이 집을 더 부러워했다. 가난하여 피죽도 못 먹는 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모여 집안일을 도왔다. 할아버지는 같이 흙에서 일을 했지만 주인이라는 권력을 누리지 않았다. 모두 어르신, 어르신 따라댔지만 할아버지는 언제나 같이 괭이 들고 낫 들고 다니며 먼저 몸 움직여 일하곤 했다.
어린 시절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어미는 뭐가 그리 급했는데 세 남매를 줄줄이 연년생으로 낳았다. 셋은 동네에 친구 하나 없어도 셋이서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 막내였지만 큰 오빠나 둘째 오빠도 친구 같았다.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엄마와 아빠의 자식이라 같지만 다른 것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일꾼들은 나를 부르는 호칭은 이상했다.
“큰 도련님, 작은 도련님, 셋째야.”
난 이름이 있었지만 셋째라고 불리었다. 도련님이라 불리는 오빠들 틈에서 아가씨도 아기씨도 아닌 ‘셋째야’라 불리었다. 하나, 둘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동네 사람들은 ‘셋째야’라 불렀다.
차별이 있어야 집단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동네 잔칫날, 만들다가 모양이 틀어져 버린 약과 1개를 두고 셋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내꺼야, 내가 제일 먼저 봤다고.”
“이게, 내가 먹을 거야.”
“내놔, 내꺼야.”
잔치 준비로 정신없던 부엌 한쪽의 다툼을 알아차린 몇몇 아낙이 모여들었다. 나이 지긋한 동네 할머니가 현명한 판단을 하듯이 모양새 이상한 약과를 집어 들었다.
“이건 둘째 도련님이 잡수시고.”
울먹거림과 씩씩거림이 섞여 있는 둘째 오빠의 손에 약과가 넘어가 버렸다. 그리곤 뒤돌아 찬장 위에 조심스레 만들어 둔 약과 하나를 더 꺼내어 첫째 오빠의 손에 쥐여주었다.
“장손은 좋은 것만 드셔야죠.”
어린 나이에도 억울함이 밀려드는 나는 목청 높여 울었다.
“셋째는 이따가 잔치 끝나고 나서 남으면 꼭 하나 챙겨두었다가 드릴께. 울지 말고. 오빠들이 잘되어야 집안도 잘 되는 거고, 오빠들 덕분에 우리도 있는 거란다.”
고만고만한 또래 남자아이들이 집안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존재들만으로도 평안을 만들어주는 신 같은 존재였다. 어린 시절 기억에 짜증이 밀려왔다. 멀리 시집을 가지도 못했다. 그 많던 재산은 오빠들의 공부, 생활비, 사업 밑천 이런저런 이유로 산도 들도, 논도 밭도 하나씩 남의 것이 되어갔다.
아버지 댁으로 가는 발걸음에 화가 실렸다. 어제 찾아 온 반갑지 않던 경아가 떠올랐다. 동네 친구 경아는 유일한 동갑 친구였지만 초등학교 이후로는 학업을 하지 못했다. 그 아이마저 시집가던 날 나에게 말했다.
“셋째는 그래도 오빠들 덕분에 고등학교까지나 나왔잖아, 난 초등학교 이후로는 여자애가 배우면 집안 시끄러워진다고 배우지도 못했어.”
경아는 서울 공장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연락이 끊어졌다가 마흔이 되어서야 마을에 잠시 들렸다. 화려한 액세서리와 고급 원피스를 입고 양산을 펼쳐 든 모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어울렸다. 남편 따라 올라간 서울에서 남편이 퇴근길 차 사고로 죽어버렸다고 들었다. 경아의 식구들은 경아를 따라가서 살아본다며 집안 식구가 모든 짐을 챙겨 올라가 연락 하나 없이 살더니 십 년이 지난 즈음에 외제 차를 타고 나타났다.
“운이 좋았나 봐, 남편은 죽었지만 보험금이 나오고, 그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샀는데 재개발을 하지 뭐야. 아파트 앞에 작은 가게가 헐값에 나와서 가족들이랑 할 줄 아는 것이 보리밥뿐이라 그걸로 장사를 시작했는데, 서울 사람들은 별미인지 매일 손님이 넘쳐흘러서 좀 더 크게 가게를 넓히고 이제 서울에 점포가 10개 정도 되었어.”
손가락의 커다란 진주 반지가 경아와 마주 앉은 읍내 제일 큰 보배 다방의 불빛보다 반짝였다.
‘보험금은커녕 딸이라고 재산 하나 안 물려주면서 배추 따위나 가져가라 하고...’
아버지 댁엔 아무도 도착해있지 않았다. 분명 이른 아침 호출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 둘이나 되는 새언니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시누이 매서운 줄도 모르고 자기들 잘난 맛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엄마가 생전에 계실 때 누누이 말을 했더랬다.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 하지만 엄마의 기다림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딸보다 며느리를 생각하는 모습이 너 잘 되라 덕 쌓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덕은커녕 먼저 그리 멀리 떠나가 버리고 남겨진 것 하나 없다.
화가 나고 억울했다. 세상엔 내 편이 없는 것만 같았고 늘 홀로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다.
아버지는 주방 근처에도 드나든 적이 없었지만 엄마가 떠난 이후로는 서슴지 않고 주방을 들락이었다. 마당 한가득 쌓아 올린 배추는 높이가 제법 쌓여있었다.
“너희 새언니들 오기 전에 일찍 와서 배추 좀 다듬고 그러면 얼마나 좋냐.”
아버지의 타박은 늦은 이에 대한 타박이 아닌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딸에 대한 속내 없는 투박이었다.
“언니는?”
“이제 올 시간 다 되어간다.”
“일찍 일찍 와서 도울 생각은 안 하고.”
“너만 오면 됐지. 굳이 여럿 불러서 뭐 하려고.”
그랬다. 이 느낌이었다. 언제나 하나만 희생하면 되는 일이었고 늘 그 대상은 나였다. 눈이 붉어졌다. 눈물이 솟구치려 하며 목구멍에서 뜨거운 열이 올라왔다.
“어머.. 아버님, 아가씨... 벌써 오셨어요?”
평생 갇혀있던 것을 토해내려 할 찰나에 등 뒤에서 높고 교태 섞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