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바리(3/5)

[쉼 소설]

by stamping ink

- 둘째 -


난 욕심이 많다. 누구보다 많이 갖고 싶고 갖은 것은 뺏기고 싶지 않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나는 사촌도 아닌 이웃을 땅을 사도 배가 꼬여 고생이다.

시집을 오며 재고 또 쟀다.

남편은 지방 유지의 둘째 아들이라 했다.

난 서울깍쟁이가 어울리는 아가씨였다.

나를 좋아하는 남자들도 제법 있었더랬다.

그래도 이 남자를 선택한 것은 차남이니 시댁에 대한 부담도 낮고 무엇보다 재산이 넉넉하니 분명 쪼개도 걱정 없으리라 생각했다.

시부모님은 온순했다.

아니 순박하고 미련하게 착했다.

그들 앞에서 눈물 몇 방울 찍어내면 통장에 몇천만 원은 쉽게 들어왔다.

물론 그만큼의 대가는 있다.

하루에 한 번씩 문안 전화하고 먼 거리를 한 달에 한 번은 달려갔다.

시댁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여했고 작은 선물이라고 쥐어들고 달려갔다.

이렇게 하는데도 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나만큼 해보라고 해라.

둘째 며느리지만 첫째 며느리보다 먼저 이 집에 시집을 왔다.

신임을 얻었고 형님이라 불러야 하는 나보다 어린 여자는 나의 경쟁 대상도 아니었다.

남편은 바보 같았다.

그 아비의 그 아들이라고 순박하고 말수 없는 시아버지와 똑같아 답답하기 그지없다.

시어머니가 시골에서 몸져누웠다가 끝내 마지막을 향해 가실 때 잠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통원해야 했다.

나의 기회였다.

마음에 없는 효도를 했다.

투자였다.


제일 힘들 때 병원에 접수와 치료를 도우러 뛰어다니며 내게 남겨질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여보. 어머니 병원에 따라가기 힘들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말수 없기로는 입에 산 거미줄 친 남자가 앙상해진 어머니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가는 도중 어머니도 아닌 나에게 말을 건넸다.

“힘들다니요. 어머니, 이이 보세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힘 빠지게 이래요.”

운전석의 남편을 흘겼다.

어머니는 앙상하게 마른 손으로 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걔가 원래 그래. 느그 아버지처럼 저리 표현이 억세단다.”

부잣집 곳간도 드나드는 생쥐에게는 별 수 없다더니 작은 도움 여러 번에 어르신들은 대뜸 힘들다는 말을 했다.

예전처럼 힘들지 않냐며 안부를 물어볼 때 조금 어려운 내색만 하면 통장에 들어오던 돈도 이제는 말로만 위로하지 통장 숫자에는 변화가 없었다.

어머니 장례식에 목 놓아 울었고 큰아들 먼저 보내고 둘째인 남편이 장손 노릇을 하느라 애쓴다며 다들 손을 잡아주었다.

두둑하게 들어온 조의금을 세어 장례비를 치를 때 남편에게 모두 위임을 했고 이런 일에 서투른 남편을 대신해 일부의 돈을 챙겼다.

어차피 이제 어머니의 제사는 남편이 치러야 하니 그 정도는 품삯이라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랐다.

얼마나 긴 세월을 시아버지까지 수발하며 살아갈 날에 대한 보상쯤으로 여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셈이 느린 남편을 대신해 계산을 하고 순박하고 셈 느린 가족들에게 나눠주려 봉투에 담았다.

장례는 장례이고 정산은 정산이었다.


가족은 상복을 벗지도 못하고 자리에 모였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만 하고 시아버지는 담뱃불에 불을 붙였다.

뒤이어 난 봉투에 돈을 내밀었다.

남은 돈 절반은 시아버지에게 드리고 나머지는 삼등분으로 나누어 봉투에 담았다고 말하고 모인 가족들에게 봉투를 돌렸다.

봉투를 받아들곤 불만이 있는 표정의 아가씨가 영 얄미웠지만 아버님께 더 드리고 우리는 오신 분들 경조사때 잊지 말고 챙길 때 쓰라며 다독였다.

매사 말도 없고 눈치만 보는 형님은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가방에 넣었다.

막내 아가씨는 여전히 입이 나왔지만 옆에 앉은 시매부의 눈치에 뽀로통 입이 나왔다.

물끄러미 봉투를 보던 아버님은 두툼한 봉투를 품에 넣지도 않고 내게 내밀었다.

“큰애가 부재니 너희가 큰집 노릇을 해야 할 테니 제사 차릴 때 보태고 집안일에 두고 써라.”

아버님은 봉투를 남편에게 내밀었다.

“아버지. 그런 게 어딨어요. 작은 오빠네는 서울 사는데 일 년에 몇 번이나 온다고 그러세요? 아버지 옆에서 챙기고 집안일 돕는 건 저라고요. 아무래도 동네 어른들 오셔서 보태주신 부조는 저희가 다 갚아야 할 텐데 오빠네가 와서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자신의 봉투만도 못마땅하던 찰나에 아버지의 봉투마저 작은 오빠에게 챙겨주는 것이 싫었던지 막내 아가씨가 소리 내어 일어났다.


작은 반상이 흔들리고 밖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놀라 대청마루 끝에 몰래 눈만 보이게 기웃거렸다.

“아버님. 그러세요. 아가씨댁이 아무래도 얼마 거리도 멀지 못하고, 저희는 자주 찾아뵈려 해도 쉽지 않으니 아버님 댁 들여다볼 때 하나라도 챙겨오게 아가씨 댁에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속이 꼬여왔지만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웬일이에요? 언니가? 진짜 그래도 되겠어요?”

뭔가 알고 이야기한다는 것처럼 눈을 내리깔고 말을 하는 태도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가씨. 저한테 뭐 하실 말이라도 있어요?”

“있지만 여기는 아닌 거 같네요.”

“있으면 말씀하세요. 저도 껄끄러운 것 싫으니까.”

두 여자의 팽팽한 기싸움에 남편과 시매부만 각자 아내의 팔을 당길 뿐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정산은 어떻게 한 거예요?”

고등학교 내내 공부하나 제대로 안 하고 시골에서 노는 걸로는 둘째라면 서러울 문제아였던 주제에 가당치 않게 도발을 했다.

“정산서 보여드려요?”

남편의 팔을 힘껏 팽개치고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그만두지 못해!”

온돌 마루에 손바닥을 크게 내리쳐 나는 소리에 놀라 몸을 멈추었다.

서류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아가씨겠지만 남편이라도 알면 난감했을 터인데 때마침 시아버님의 불호령에 모두 제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더 이상 말이 없었고 시아버님의 눈빛만으로 달려들던 아가씨도 꼬리를 내렸다.

어떤 말 한마디보다 구들장 쪼개지는 소리는 모든 입을 다물게 하였다.

시어머니가 떠나고 첫 제사가 돌아왔을 때도 불만 가득한 눈빛은 그날과 같았다.

아무래도 가기 싫은 곳에 김장 배추라니...

널린 게 김치고 마트에 가면 공장에서 나온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널렸는데 쓸모없는 배추는 왜 심고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초록색 쇳소리가 나는 대문을 열고 보니 쌓여있는 배추가 한눈에 들어온다.

언제 왔는지 시아버지와 시누이가 마주하고 있다.

“어머. 어머. 아가씨. 벌써 오셨어요? 시골이라 왜 이리 추운지 모르겠어요.”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전 내일이나 오시나 했는데.”

“무슨 말을 그리 섭섭히 하고 그러세요. 새벽부터 집안 정리 다 하고 부랴부랴 떠나서 도착한 거라고요.”

가자미 눈으로 쳐다보는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손에 쥐고 있던 쇼핑백을 디밀었다.

“아버님, 어버님 계실 때 인삼 사다 드렸는데 아버님 혼자 계시니 홍삼으로 사 왔어요. 식후에 이거 한 봉씩 잡수시면 되세요. 그리고 아가씨네도 아이가 잘 생기지 않으시니 걱정돼서 임신 준비하는 영양제라고 하네요. 이거 드셔보시라 이것도 챙겨왔어요. 그리고 형님... 형님은 아직 안 오셨나 봐요?”

보이지 않는 형님이 늦은 걸 알려야 열심히 하는 둘째가 더 예뻐 보일 테니 아직 도착할리 만무한 형님을 끄집어냈다.

“일 끝마치고 애 데리고 오려면 늦겠지. 그나저나 잘 먹으마.”

봉투를 받아들고 툇마루 위에 내려놓는 시아버지를 따라 영양제 병을 받아든 시누이는 새침하게 영양제를 손에 들었다.

“아가씨. 그거 백화점에 유명한 영양제 파는 곳에서 사 온 거예요. 천연 제품만 취급하는 데라 가격이 좀 있었지만 아가씨 아기 준비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죠.”

“고... 고마워요.”


애써 마음을 숨기며 영양제를 자기 가방에 넣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고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성질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올라가고 싶지만 초등학생 아이들 때문에 참아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를 사귀어 왔는데 같은 단지 펜트하우스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 친구가 엄마 친구가 되다 보니 서로 왕래할 때마다 여간 기분이 나빴다.

남편에게 이사를 종용했지만 빚을 내어 넓은 평수로 가야 할 이유가 없다면 단칼에 거절했다.

프로방스풍으로 꾸며둔 나의 주방에서 차를 마시는 동네 엄마들의 부러움은 넓은 평수에 전용 바까지 달린 아파트 단지 내에 다섯 채만 있는 그 집으로 호기심이 옮겨갔다.

두 층을 이어 커다란 창문에서 내려오는 햇살도 너무 좋았고 위층에서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에도 자유로워 더욱 여유롭게 보였다.

하늘의 기회인지 아파트 상가 부동산에 다섯채 중 한 채의 매매가 붙었다.

남편이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면 내가 움직여야 했다.

관심 갖는 이가 많다고 부동산 주인이 넌지시 귀띔을 했다.


방법은 내가 찾으면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샘바리(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