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바리(2/5)

[쉼 소설]

by stamping ink

- 첫째 -


남편과 사별한 지 다섯 해가 지났다. 갑작스러운 두통을 호소하던 남편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미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아프다고 병원을 찾아가는 자신보다 가족을 챙기던 자상한 남자였다. 그가 떠나고 나에겐 아들 하나만 남았다. 남편이 없이 혼자 세상에 홀로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말수 없고 조용하신 시부모님은 손자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지 못하셨다. 요즘 시대에 가당치 않다는 말이 나오지만 나는 죄인이었고 암묵적 문제 있는 여자였다. 시집오고 반년이 지나니 친정어머니의 마음의 같이 급해졌다. 용하다가는 약도 지으러 다니고 불임으로 유명한 병원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겉보기엔 숫기 어린 처녀의 손을 잡고 못 갈 곳이 없었다. 나보다 앞선 시대에 딸만 낳아 키운 엄마의 대물림이라 생각이 되어 엄마는 이를 악물고 나를 앞세웠다. 나의 잘못도 아닌 일을 본인의 잘못이라도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몇 번의 기회는 찾아왔다. 하지만 나의 여린 자궁은 아이를 보듬기엔 한없이 부족했다. 어렵사리 착상을 하고 한 주를 꼬박 누워 늙은 어미가 지어주는 밥을 입에 넣었지만 아이는 우리의 곁을 떠났다. 두 번째 소식이 들려왔을 때는 걸음조차 조심하고 침대에 누워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 아이도 미끄러지듯 떠나갔다. 세 번째 아이가 들어섰다. 친정어머니는 나의 집으로 오기 전 새벽에 절에 들러 기도를 올리고 겨드랑이에 땀이 흠뻑 벤 채로 매일 드나들었다. 친정어머니가 오가던 절에서 만난 나이 든 보살이 어머니에게 안타까운 사정을 달래려 말을 했단다.

“병원은 자주 다닐 필요가 없어. 오가면서 아이가 더 위험하고 스트레스 받아서 자꾸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거야.”

엄마는 철석같이 그 말을 믿고 산전검사를 다니려는 나를 붙잡고 하루하루 밀어두었다. 배가 제법 봉긋하니 올라섰을 때 검사를 위해 병원에 갔다. 초음파를 촬영하는 담당 선생의 눈빛이 이상했다.

“담당 선생님이 말씀하실 건데... 혹시 미리 들은 말씀은 없으시죠?”

조심스레 건네는 말에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대기실에서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 안의 의사는 초음파실에서 만난 담당 선생과 눈빛이 같았다.

“혹시 여기 다니시기 전에 다른 병원에 다니셨나요?”

“아니요. 산전에 조금 다니다가 유산이 너무 심해서 집에서 조리하고 있었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흠... 알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검사를 좀 더 해봐야겠지만 아이가 다운증후근인 듯싶습니다. 여기 사진과 검사한 결과를 보시겠습니까?”


그 후로 의사가 건넨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이미 아이를 선택할 시기는 지났다고 했다. 자신이 없었다. 지우고 싶었다. 남편의 한마디가 흔들리는 나를 잡았다.

“우리 아이야. 우리를 찾아온 우리 아이야.”

우리 아이다. 태명을 우리라 지었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와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아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를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아이의 상태가 많이 달라진다 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찹쌀떡처럼 하얀 우리가 우리 곁에 왔다.

지켜주리라며 믿으라 했던 남편의 미간에 주름이 자주 잡혔다. 태어난 아이에 대한 고민이리라 생각하고 서운한 감정이 오해를 만들었지만 다그치는 말에 결국 머리가 아프다 했다. 털어놓듯 자신까지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그는 떠났다. 우리와 나만 세상에 남았다. 홀로 견뎌냈다. 주변에서 위로 같은 간섭이 들어와도 우리와 나는 견뎌야 했다. 우리는 약했다. 잦은 잔병치레가 이어졌고 병원비가 급했다. 친정과 시댁의 몇 번의 도움으로 크고 작은 수술이 이어졌다. 견뎌내는 우리가 대견스러웠다. 마지막 병원에 입원했던 그날, 말수 적고 조용한 어머니와 샘 많은 동서와 시누이가 병문안을 와서 문밖에서 하는 소리를 들었다.


“언니는 이제 보내주지. 왜 고생하는지 모르겠어.”

병원 냄새 맡으면 머리 아프다던 시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이 마음은 여리시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또 한고비 이리 넘기려 하는데 어머니 댁도 노후라는 게 있는데 남김없이 다 도와주시고 나중에 힘드실까 봐 걱정이에요.”

시댁에서 사업을 하니, 아이를 키우는데 힘들다고 해대며 시골 땅을 제법 팔아 받은 걸 아는데도 두어 번 도와준 병원비에 어른 걱정을 하는 척이다.

“어쩌겠니. 나도 저 애 생기고 아들 보낸 것 같아. 애가 들어서더니 집안이 이 모양이고, 그걸 굳이 살리겠다고 저 난리니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어머니의 진심에 자신의 아들 잃을 것을 나의 아들 탓하는 것이 들고 있던 물병 손잡이에 힘을 쏟았다.

그렇게 몇 달도 못 채우고 우리는 남편 곁으로 떠났다.


나의 방법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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