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하루
정도를 지킨다는 건 참 어렵다. 삼십 평생 대개 '모 아니면 도'로 살아서일까. 모든 게 극단적이다. 그나마 정도를 지키는 건 삼삼하게 간이 밴 음식을 좋아하는 입맛뿐이다.
요즘 일상도 그렇다. 바쁠 땐 미친 듯이 바쁘다가도 한가할 때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가하다. 프리랜서로 산다는 게 이런 걸까 온몸을 받아들이면서도 막막한 무료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스럽게 다가온다.
"얼마 만에 일이야!" 소리 질렀다. 프리를 선언한 지 열흘 째. 잘 녹은 엿가락이 늘어지는 것처럼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을 때, 일 하나가 내 손을 잡았다.
가만히 쉬고 있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내게 기쁨으로 다가온 일.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노트북과 떨어지지 않았다. 자료를 조사하고, 중요한 것을 체크하고, 머리로 상상한 것들을 펜으로 일일이 그려댔다. 창밖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일즈음 마무리 된 일. 단단히 굳은 어깨와 목은 오늘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하루를 얼마나 경이롭게 살았는지 깨닫게 했다.
일하는 기쁨을 고스란히 느꼈던 하루. 모 아니면 도인 삶에서 '일'은 늘 '모'이길 바란다. 제발, 제발, 딱 오늘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은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는 유한한 삶이니까.
2023.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