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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선 Nov 13. 2024

[명언 속 심리학] 랄프 왈도 에머슨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성취이다.

수진은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서, 육아와 가사에 철저한 계획을 세우며 살아갑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아이들과 집안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녀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머릿속에 오늘의 할 일 리스트를 떠올립니다. 정성스레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의 옷과 학교 준비물을 점검하며 학교에 보내는 동안에도 수진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그녀의 헌신과 노력으로 집은 늘 깨끗하고 아이들도 씩씩하게 자라는 듯합니다. 밖에 나가면 저출산 시대에 어떻게 두 아이를 키우냐며 애국자라는 칭송을 받기까지 합니다.


남편이 퇴근해 집에 들어오는 순간, 수진은 “이제 본격적인 저녁 업무가 시작됐다”는 결의에 찬 모습으로 남편을 맞이합니다. “여보, 설거지 좀 부탁해. 그리고 큰애 숙제 봐주고, 나는 작은애 잠자리 준비할게.” 그녀는 능숙하게 남편과 역할을 분담합니다. 남편은 피곤한 얼굴로 수진의 말을 따르지만, 예전의 그녀와는 어딘가 다른 모습에 묘한 어색함을 느낍니다.


결혼 전, 수진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편지를 자주 건네던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은 작은 실수도 매력으로 보였던 그 시절을 문득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지금 수진은 매일같이 'to-do list'의 항목을 하나하나 지우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집안일을 할 때도, 육아를 할 때도, 그녀의 손에는 항상 체크리스트가 들려 있고, 그 리스트가 모두 지워지고 나서야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어느 날, 수진은 아들의 그림을 벽에 붙이다가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아이가 그림 속 자신의 모습에는 한 손엔 청소기와 다른 손엔 '오늘의 할 일'이 적혀있는 아이패드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사랑을 주는 엄마라기보다는 로봇이나 실력 좋은 매니저 같은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함이었던 수진이가 아이들에게는 이런 모습으로 비치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충격을 받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수진을 훌륭한 부모라며 칭찬하고, 그녀 또한 자신이 지금 자신이 노력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믿어 왔지만, 이 그림은 그녀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줍니다. 육아가 자신의 삶을 모두 채워도 될 만큼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일까? 그녀는 자신이 어디서부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달려왔는지 혼란스럽기 시작합니다.


남편은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수진아, 요즘 우리 대화가 줄어든 것 같아.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그냥 옛날처럼 아무 얘기나 하면서 조금 천천히 지내면 어떨까 싶어.” 수진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이 스쳐갑니다. “그러다 보면 일을 다 못 끝내고 내일로 미루게 되잖아. 그래도 당신이 도와주니 많이 수월해.” 수진은 다시 할 일로 눈길을 돌리지만, 남편의 말은 계속해서 마음속에 남습니다.


To be yourself in a world that is constantly trying to make you something else is the greatest accomplishment.

- Ralph Waldo Emerson -


세상이 자꾸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 해도,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성취다.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일이 예측 가능하게 돌아가길 원합니다. 무언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불안이 커지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도록 철저히 계획하고 목표를 세우는 편입니다. 이렇게 하면 상황이 불확실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느끼기에, 이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불안이 높아질수록 본능적으로 ‘규칙이나 계획’을 따르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이렇게 규칙에 의지하면 예측 가능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 불안감이 줄어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 전날 불안해지는 학생이 꼼꼼하게 공부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도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는 것이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수진은 연애 시절 남편에게 편지들을 자주 썼다는 것에서 그녀의 작고 소중한 마음씨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남편도 그렇게 수줍게 미소를 띠는 수진의 모습에 반해 결혼을 했겠죠. 그녀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미소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깊이 감춰져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 "프로일잘러"가 아닌 "프로살림꾼"으로서의 자신을 새롭게 정의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이 거친 세상 속에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남편의 아내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죠.


누군가에게는 한 여자의 성장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리따운 소녀가 아줌마가 되어가는 서글픈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수진. 그런데 그녀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화장실에 깨끗한 수건을 꽉꽉 채워놓고, 요리 중에 튄 기름이 눌어붙지 않게 물걸레질로 닦아내는 일. 자신의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수많은 살림을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걸요. 


아무도 수진에게 "깨끗하게 청소도 하고 요리도 잘하는 아내가 되어줘"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엄마가 매일 우리 밥그릇을 깨끗하게 씻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 수진의 모습은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모습이었던 거예요. 물론 그 모습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수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엄마이고 아내입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고, 남편조차 그녀의 생활력에 대해 고마움은 느낄지언정 처음의 그 예쁜 마음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수진이 스스로의 지난날을 아쉬워할지도 모릅니다.


수진이 진정으로 필요한 모습은 다름 아닌 ‘수진다움’ 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정말 소녀 같아!”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모습, 남편이 “수진이는 결혼하고도 여전히 내게 귀여운 여자야”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 말이에요. 그런 모습으로 살아도 사실 누구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결국, 수진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그녀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만약 나에게 수진이 같은 친구가 있다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을 것 같나요? 내가 수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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