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살과 항우울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불편한 진실

자살 충동이 아니라, 충동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by 황준선

자살은 단순히 자살 충동이 생겨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충동이 생겨서 다 자살한다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남아있을까? 그래서 정확히 표현하면, 충동이 생겨서가 아니라 충동이 생긴 후 그것을 조절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이 충동을 누그러뜨릴 수 없는 이유는 왜 발생할까?


사람들은 ‘강한’ 자살 충동을 느끼면 자살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개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호한 점이 많다. 우선, 충동은 1부터 10까지 점수로 측정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자살 충동의 강도를 직접적으로 묻거나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뿐이며, 실제로 자살한 사람에게 그 강도를 물어볼 수는 없다. 또한, 충동의 강도는 개인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이 라면이 엄청 맵다.”라고 말했을 때, 어떤 사람에게는 땀을 뻘뻘 흘리며 먹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침 공복에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정도인 것과 같다.


따라서 자살을 ‘충동이 얼마나 강했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충동의 크기가 아니라, 그 충동을 조절을 실패하게 만든 심리적, 환경적 조건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다.


자살의 유형: 계획된 자살과 충동적 자살

자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계획된 자살: 이 유형의 자살은 일정한 준비 과정을 거친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은 평소 쓰던 물건을 주변에 나눠주거나, 냉장고를 채우지 않는 등 생활 패턴에 변화를 보인다. 유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으며, 마지막 순간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는 등의 특정한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이는 자살을 결심하고 심리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행동들이다.

충동적 자살: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충격이 발생했을 때, 준비 없이 즉각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자살 유형이다. 이 경우에는 유서나 사전 정리 과정 없이 갑작스러운 행동이 나타난다. 충동적 자살의 경우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정신과 약물의 사용이다.


항우울제와 자살 충동: 약물이 미치는 영향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항우울제를 비롯한 정신과 약물의 부작용 중 하나가 ‘자살 충동’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자살 충동’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충동의 유발이 아니라, 자살 충동을 억제하는 사고력을 약화시키는 현상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아,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하지만 그래도 죽을 수는 없지’라는 자동적인 억제 기제를 작동시킨다. 생존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우울제의 복용 중에는 ‘죽고 싶다’라는 생각은 남아 있지만, 이를 억제하는 과정이 둔화되거나 약화될 수 있다. 즉,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래도 죽을 수는 없지’라는 생각을 떠올릴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약학적 근거: 자살 위험을 증가시키는 약물 메커니즘

항우울제는 우울한 기분을 완화하고 정서적 균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지만, 특정한 시점에서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특히,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 항우울제는 초기 복용 기간 동안 에너지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보이는데, 이 시기가 자살 위험이 가장 높은 시점으로 알려져 있다. 즉, 우울함은 남아있지만, 행동할 힘이 생기면서 자살 시도가 증가할 수 있다.


2004년, 미국 FDA(식품의약국)는 SSRI 항우울제가 청소년 및 젊은 성인에서 자살 충동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 여러 연구에서도 특정 연령대에서 항우울제 복용 초기 자살 위험이 증가한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정신의학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에서는 항우울제 복용이 자살 충동을 2.39배, 자살 시도를 2.28배, 공격성을 1.97배 증가시킨다는 데이터를 제시한다.


매뉴얼대로 약을 줬으니, 난 잘못이 없어요. 약을 더 주면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한국에서 항우울제를 포함한 정신과 약물 처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자살률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만약 누군가 다이어트를 위해 특정 식품을 꾸준히 먹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면, 그 식품이 다이어트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도 자살률이 줄지 않는다면, 우리는 항우울제의 실질적인 역할에 대해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그런데도 자살 관련 소식이 들려오면, 그 다이어트 식품을 처방했던 사람들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오히려 해당 식품을 더 많이 복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지원 확대만 논의될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상은 1개, 심리는 80억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