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은 위로와 공감을 해주는 거고,
정신과 상담은 병을 진단하는 거 아니에요?
약을 복용을 하면서 심리 상담을 병행하면 결과가 훨씬 좋다고 알고 있어요.
그럴듯한 공식처럼 보이는 이 말은 틀린 얘기다.
정신건강의학과를 포함한 의학은 기본적인 치료 메커니즘은 '증상의 완화', '평균 수치로의 회귀'이다.
발열이라는 증상이 생기면 열이라는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약을 처방한다.
디스크가 나와 통증이 생기면 그 디스크를 정상 위치로 돌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통증을 완화하는 약을 준다.
140/90mmHg(혈압의 수치)이 고혈압 판단의 기준이기에,
그 수치를 기준으로 저혈압, 정상 혈압, 고혈압을 나누고
혈압 수치의 평균 범위 밖에 벗어난 사람이
혈압 수치의 평균 범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의학적인 조치를 취한다.
쉽게 말하면, 몸이 '비정상' 상태에 들어서면 다시 '정상' 상태로 돌리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도 비정상 상태에 들어선 사람을 환자로 분류하고
그 환자가 가진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평균 상태로 돌려놓기 위한 치료를 시행한다.
아주아주 간단하게 쓴 글이라 비약이 심하지만,
일반인의 시선에 맞춰 최대한 쉽게 서술한 의학의 본질적인 관점이다.
정신건강의학과도 [DSM-5] 또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을 바탕으로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에 처해있는 사람을 환자로 분류한다.
정상/비정상의 구분은 많은 표본을 바탕으로 한 연구를 통해 통계적 근거로 한다는 뜻이다.
통계는 그래프의 가운데에 있을수록 정상이며, 양옆으로 많이 삐져나간 상태를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로 본다.
정신과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많이 자주 우울한 사람을
뇌의 특정 부위의 고장이나 호르몬의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비정상'상태로 분류하고
그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을 주어 정상 상태로 돌려놓으려 한다.
심리 상담도 고전적인 심리 상담이 있고, 현대 심리 상담이 있다.
고전적인 심리 상담은 의학과 많이 닮아있다.
고전 심리 상담의 목표 또한 인간의 정상 상태로의 회귀가 본질적인 목표이다.
행동 심리, 아동 심리, 조직 심리 등도 다 같다.
어떤 사람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을 정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
어떤 아동이 비정상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 그것들을 정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
어떤 조직원이 정상적인 조직원으로서 적응 및 행동할 수 있는 방법.
마음의 '정상'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고전 심리 상담은 임상으로 쌓은 데이터, 통계, 그리고 여러 심리 이론과 검증을 근거로 한다.
쉽게 말하면,
의학과 고전 심리학은 인간을 포유류의 한 종으로 보고
이 동물의 정상/비정상 상태를 판단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이 기본적인 프레임에 대해 의문을 던져봐야 한다.
"정상이라는 게 뭘까?"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뭘까?"
현대 심리학은 인간의 평균 또는 표준적인 잣대를 개인에게 적용하지 않는다.
(평균을 연구하는 것은 그거대로 분명히 의미가 있으며,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
인간은 각자 다른 마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같은 상황 속에 있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이유는
각자 다른 마음을 갖고 살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은 '인간' 아니라 '그 사람'이 현재 겪고 있는 심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그리고 그 사람 맞는 심리적 해결 방법을 찾는다.
바꾸어 말하자면
의학이나 고전 심리학은
"A라는 상황에서는 A라는 심리적 반응이 '정상'이고,
B 또는 C로 반응하는 사람을 환자 또는 비정상 상태"로 간주하여
A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도록 약물이나 행동치료 같은 것을 시행한다.
반대로 현대 심리학은
"A라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A / 누군가는 B / 누군가는 C
라는 반응을 보이게 하는 각자만의 심리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 하여
각자에게 가장 맞는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현대 심리학에선 일률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A라는 방안이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답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전혀 생뚱맞은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가 없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들이
"힘을 내세요"
"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을 키우세요"
"당신은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회복 탄력성을 키우세요"
"당신의 문제는 어릴 적 부모의 무관심 때문이군요"
같은 말들이다.
그러나 이 말들은 "너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잘 이겨내길 바란다"의 다른 표현들일뿐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심리학자들도 고전 심리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래서 이 글의 첫 문장에 있는 오해들이 생겼고, "상담 = 위로"라는 인식이 자리 잡힌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정신과 밑으로 스스로 깔고 들어간 것이다.
이 글은 어떤 분야를 평가절하하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
이 글이 계속 길어지고 지루해지는 걸 알면서도 각 분야에 정확한 설명을 우선이라 생각했다.
절대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뇌의 호르몬 불균형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면
정신과에 가서 약물치료를 하면 된다.
"그렇지만 왜 뇌 호르몬 관련 약을 처방하면서 뇌 MRI는 찍어보지 않는 거지?"
또는
"이 약의 부작용은 어떤 것이 있지?"
이 정도의 비판적인 사고는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 비정상적인 심리적인 반응이나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상담 어플 같은 것을 통해 상담을 받아보면 된다.
그렇지만 상담도 마찬가지로
"'어렸을 적 상처', '트라우마', '이해와 공감 능력의 중요성', '작은 것부터 변화',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공감 필요' 상담사가 이런 뻔한 레퍼토리를 돌려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정도의 비판적인 사고는 필요하다.
만약 현대 심리학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싶다면?
아쉽게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을 내가 바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이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기준이 되는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 잣대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는 알려줄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해 [성별, 나이, 학력, 거주지, 결혼 유무, 소득]를 사용하지 않고 설명해 보세요
나에 대한 생물학적 정보나 인구통계적인 정보를 사용할 수 없는 이 질문에
2~3 문장 이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의 마음과 몸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안 되어 있는 상태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수 세기 동안 '사회 속에 나'로 존재했기에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삶이 익숙하지가 않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보여야 하는 행동,
'10대 인간이 해야 하는 일'과 '50대 인간이 해야 하는 일',
'남성'이라면 해야 하는 일과 '여성'이라면 해야 하는 일,
이런 집단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에만 익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 딱 한 명의 나에 대해서,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건 어렵다.
훌륭한 현대 심리학자는 상담 또는 검사지를 통해
당신에 대한 설명의 빈칸을 잘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 글의 존재 이유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