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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틴팅(선팅) 문화에 담긴 속마음

보이지 않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

by 황준선

틴팅 규제와 짙은 틴팅의 위험성

한국에서는 자동차 틴팅, 즉 창문에 필름을 부착해 차량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행위가 법적으로 규제되고 있다. 특히 전면 유리는 가시광선 투과율이 70% 이상이어야 하며, 이는 운전자의 시야를 충분히 확보하고, 사고 발생 시 외부 구조대가 내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안전상의 조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법적 기준이 자주 무시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큰 위험은 시야 제한이다. 짙은 틴팅은 특히 야간이나 비 오는 날과 같은 조건에서 운전자의 시야를 심각하게 방해하며, 이는 보행자 인지 지연, 신호 위반, 추돌 사고 등 다양한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차량 내부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되면, 응급 상황 시 구조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짙은 틴팅이 운전 능력에 미치는 영향이 마치 음주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짙어지는 이유

현실에서는 차량을 출고하자마자 틴팅 샵으로 향하는 것이 일종의 ‘출고 의식’처럼 여겨진다. 특히 밝은 틴팅은 ‘차를 꾸미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분위기 때문에, 보통 30% 또는 15% 이하의 매우 짙은 농도로 시공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햇빛 차단이나 차량 보호를 이유로 들거나, “나는 시력이 좋아서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이는 음주 운전자가 “나 술 마셔도 운전 잘한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만으로는 거의 모든 사람이 틴팅을 하는 문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사실 그 이면에는 ‘심리적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내가 보이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자, ‘타인이 나를 들여다보는 것’에 대한 경계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틴팅 문화에 드러난 한국인의 심리

한국 사회의 틴팅 문화는 단순히 햇빛을 차단하거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차원을 넘어, ‘진짜 내 모습은 감추고 싶다’는 심리적 기제를 반영한다. 이는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라기보다는, 보여지는 방식은 내가 통제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에 가깝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태도로 앉아 있는지,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는지를 타인이 자유롭게 관찰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이 문화의 핵심에 자리한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감정이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단지 스스로를 감추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타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 또한 불편해한다.


이는 깊은 심리적 역설이다. 본능적으로는 진정성 있는 관계, 솔직한 표현, 꾸밈없는 감정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런 것들이 주는 낯섦, 불완전함, 감정의 불균형 앞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왜 그럴까? 타인의 느슨해진 얼굴, 꾸밈없는 자세, 자기 안식처에서의 무장 해제된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도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순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유지해 온 ‘포장된 자아’와 충돌한다.


나는 나를 감추고 있는데, 너는 왜 그렇게 편하게 있느냐는 무언의 긴장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결국 이 불편함은 “나도 숨기고 있으니 너도 숨겨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와 압박으로 이어진다.


이는 ‘보여지는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한국적 사회성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정서적 여백을 원한다. 너무 깊이 들여다보는 것도,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피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짙은 틴팅은 하나의 물리적 장벽이자 심리적 안전지대다. 동시에 우리는 타인에게도 그 장벽을 기대한다. 나도 너를 보지 않을 테니, 너도 나를 보지 말아 줘. 모두가 서로에게 가면을 씌워주길 바라는 묵시적 합의가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한국 사회의 틴팅은 단순한 시야 차단을 넘어,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하나의 예의이며, ‘진짜 나’와 ‘사회적 자아’ 사이에 놓인 얇지만 단단한 막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가 관계의 규범이며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방식이 된 사회.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자동차 틴팅이 말해주는 진짜 이야기다.



틴팅은 유리가 아니라 거울이다

자동차의 틴팅은 단순히 유리를 어둡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고 싶지 않음’의 상징이자, 동시에 ‘보지 않기를 바라는’ 심리의 표현이다. 틴팅을 통해 우리는 사회 속에서 유지해 온 ‘보여지는 나’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감춘다.


결국 틴팅된 유리창은 더 이상 유리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한국인의 짙은 틴팅 문화는 단지 자동차 문화의 일면이 아니라, 심리적 문화의 창(窓)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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