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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자부심의 선택, 그랜저

by 황준선

증명보다 납득

이 짧은 한마디에는 단순한 선택을 넘어, 소비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 담겨 있다.

최근 그랜저의 구매층은 중장년층을 넘어 30~40대까지 넓어졌다.

과거에는 '성공의 상징'부터 뒤이어 ‘안정적이고 무난한 차’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의 그랜저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소비 선택의 결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젊은 소비자라고 해서 모두 화려하고 눈에 띄는 차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랜저를 선택한 이들은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기준에 충실한 소비를 중시한다.


같은 예산으로 수입차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랜저를 고른 이유는 분명하다.
멋져 보이기 위한 차가 아니라, 지금의 내 삶을 설명해 주는 차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랜저는 그 요구에 조용하고 단단하게 응답한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소비’—이것이야말로 실제 구매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는 키워드다.


그랜저라는 균형의 상징

‘그랜저’는 단순한 자동차 모델명이 아니다.
1980년대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중산층의 자의식과 함께 변화해 온 하나의 상징이다.

2000년대에는 ‘성공의 문턱’이었고, 2010년대에는 ‘무난한 중산층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2020년대의 그랜저는 더 이상 출세의 상징도, 평범함의 증거도 아니다.


이제의 그랜저는 남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나 스스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다.
외제차처럼 과시적이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소극적이지도 않은—균형 잡힌 자의식의 표상이다.


그랜저를 선택한 사람들의 5가지 심리 세그먼트

내적 기준형 — “내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인지적 부조화를 싫어한다.
“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랜저는 외제차만큼 ‘비싸 보이지는 않지만 값어치는 한다’는 점에서 자기 설득이 쉬운 차다.
잔고장, 감가상각률, 성능 등 객관적 지표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안도감을 준다.


사회적 균형형 — “무난하지만, 그 안에 품격이 있다”

이들은 남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지만,
더 이상 ‘브랜드로 자신을 설명하는 피로감’은 감당하고 싶지 않다.

그랜저는 이들에게 과하지 않은 사회적 신뢰를 제공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색하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선택이다.


성장 전환형 — “이제는 나도 괜찮은 어른”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가족을 꾸리고, 책임이 늘어나는 시점.
이들에게 차는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담는 공간이 된다.

그랜저는 그 전환기의 감정과 자존감을 안정적으로 받아주는 존재다.
“이 정도면 괜찮아.”
삶을 스스로 허용하는 순간에, 그랜저는 자연스럽게 곁에 있다.


반(反) 과시형 — “진짜는 말이 많지 않다”

이들은 고관여 소비자이면서도 낮은 과시 성향을 지닌다.
많이 비교하고 오래 고민하지만, 결정한 뒤에는 조용히 만족한다.

그랜저는 ‘잔잔한 실력’으로 이들을 설득한다.
과하지 않은 디자인, 조용한 실내, 안정적인 유지비.
말하지 않아도, 알고 보면 다 있는 차.


보호자형 — “내가 아니라, 우리가 타는 차”

이들은 공감 소비자다.
내가 편한 것보다, 함께 타는 사람의 편안함이 더 중요하다.
가족, 부모, 아이의 안락함이 기준이 되는 사람들.

그랜저는 그들에게 ‘가족의 무대’가 된다.
소음, 진동, 공간, 승차감—모든 요소가 다수를 위한 선택이다.




그랜저를 사서 유지하는 데에는 돈이 꽤 든다.
보험료, 유지비, 세금까지 따지고 보면 가벼운 선택은 아니다.
그런데도 길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랜저와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이렇게 부자 나라였나?”


하지만 그렇게 흔하게 보이는 그랜저 한 대, 한 대마다 각자의 이유와 기준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또 누군가는 조용한 자부심을 위해 이 차를 선택한다.


그랜저는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신,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납득할 줄 아는 사람들의 차다.
브랜드 대신 기준을 따르는 사람들, 과시 대신 균형을 선택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그랜저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조용히 설명해 주는 문장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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