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심리학이 헛소리인 이유
긍정은 좋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좋지 않은데, 좋다고 하는 것은 '긍정'이 아니라 '왜곡'이죠.
채정호 교수,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 세바시 강연 중.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인정하는 일. 또는, 적극적으로 의의(意義)를 인정하는 일.
긍정의 사전적인 정의다.
흔히 "쟤는 참 긍정적이다"라고 하는 말의 뜻은
사실 '낙천적이다'라는 의미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긍정의 힘이란,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물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불편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 어때? 살쪘어?"
라는 말에
"응 저번보다 살이 쪘네"
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쉽지가 않다.
이 정도면 다행이지만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에
"이건 좀 잘못되고 있어 보이는데요?"
라고 말을 꺼내기가 쉽지가 않다.
여기서 '긍정의 힘'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당연하겠지만,
질문과 답에는 질문하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이 있다.
그 둘의 의도가 맞아떨어질 때는 긍정의 힘이 발휘된다.
"나 살쪘지?"라는 질문에
나의 체중의 물리적인 변화가 있어 보이냐는 의도가 아니라
"살 안 쪘다고 말해줄래?"
라는 의도가 있다면
살 안 쪘다고 대답을 해주면 된다.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봐준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긍정적인 사고를 한 것이다.
만약
"나 살쪘지?"라는 질문에
체중의 변화를 물어보는 의도가 있다면
대답해 주는 사람이 있는 그대로 답을 해주면 된다.
둘 다 긍정적인 대화이다.
반면에
그 의도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는
긍정의 힘이 발휘되지 않는다.
좀 더 리얼한 예시를 들어보자.
한 여성이 여름에 놀러 갈 계획을 세우며
쇼핑몰에서 비키니를 검색하고 있다.
지나가던 다른 여성이
"그거 살 거야?"라고 물어보았다.
여름 여행 계획을 세우던 여자는
"네 몸매를 봐라, 그 옷이 가당키나 하니!?"
라고 시비조로 들렸다.
말다툼은 시작됐고 사이가 틀어져 버렸다.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는 어땠을까?
단순히 구매의사를 물어본 것일 수도 있고,
비꼬는 시비조였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의도를 척척 알아내면 좋겠지만
그것 역시 어렵다.
그걸 알아내는 방법에 대한 글도 아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사람의 의도를 긍정하는 것도,
결국은 내 마음에 달렸다는 것이다.
비키니를 고르던 여자가
자신의 몸에 콤플렉스가 없고
평소 몸매에 자신이 있던 사람이라면
싸우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내 몸을 알아주는 질문자가 고마웠을 수도 있고
내가 이걸 입으려고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했고
식단 관리를 열심히 했는지 자랑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이
바로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었다.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하면 트러블이 생긴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어떻게든 부드럽게, 논리 정연하게
근거를 갖추어 얘기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완전 틀린 노력은 아니었으나 본질적인 해법은 아니었단 뜻)
그때까진
내 의도는
사실 듣는 사람 마음에 달려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공격할 의도가 없지만
그걸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의 몸매가 비만이기 때문이다.
비만해진 마음에는
어떤 얘기를 해도 그게 곧이곧대로,
긍정적으로 들리지가 않는다.
그러면서 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냐는 반문까지 듣는다.
내가 마음이 여린 편은 아니지만,
내 '긍정'적인 의도가 빈번히 왜곡될 때마다
항상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행인 것은 이런 긍정적이지 못한 상황에 맞추려 노력하면 할수록
특히 나 같은 사람이
나가떨어지고 꼬꾸라지는 상황을
수많은 임상 데이터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생산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생사람 잡는 이야기라고 듣는 사람이 있더라도.
Productive 한 주제를 계속 찾아야 한다.
Provocative 하다고 듣는 사람이 있더라도.
긍정은 밝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긍정은 조금 아픈 것이다.
그래도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