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가 앞뒤로 바뀐 세상> 세진과 학교

by 황준선

박세진은 선생님이다.

아침 7시 40분.


등굣길은 언제나처럼 시끄러웠다.

학생들은 서로 욕설을 섞어가며 어깨를 밀쳤고,

누군가는 교문 앞에서 쓰레기통을 걷어차며 웃었고,

누군가는 교복 셔츠를 풀어헤친 채 담배 냄새를 풍겼다.


그 풍경을 보며 세진은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셋을 넘기지 않으려 애썼다.

그 이상 세면,
예전의 장면들이 떠오를 수 있었다.
줄 맞춰 서 있던 아이들,
고개 숙여 인사하던 얼굴들,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는 말.


그 기억은
이 세계에선 위험했다.

“선생님, 오늘은 안 늦었네?”

한 학생이 세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말투는 버릇없었고,
눈은 교사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세진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 아침부터 에너지 넘치네.”

그 말에 학생은 만족한 듯 웃으며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세진은 CCTV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학교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명문대 합격자를 다수 배출하던 곳이었다.


교실

칠판에는 분필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답은 폭력이다

세진은 그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지우는 순간,

그는 ‘권위를 회복하려 한 교사’로 기록될 수 있었다.


“자, 오늘은—”

세진이 입을 열자

앞줄에서 의자가 일부러 크게 끌렸다.

“쌤, 오늘 수업 안 하면 안 돼요?”
“국어는 이미 충분히 망했잖아요.”


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수업이라는 형식이 생각을 막을 수도 있으니까.”

학생들이 웃었다

이 학교의 평가 기준

여기서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은 명확했다.

교사에게 얼마나 대드는가

수업을 얼마나 방해하는가

교과서를 얼마나 무시하는가

질문이 얼마나 엉뚱한가


그리고 교사를 평가하는 기준도 명확했다.

학생 평균 성적이 낮을수록 우수

통제 불능 상황이 잦을수록 가산점

“권위적이다”라는 민원이 0건일수록 최고 등급


문제는, 너무 조용한 아이였다

창가 맨 뒤.
고개를 숙인 채 책을 읽고 있는 아이가 있다.

그 학생은

떠들지 않는다

욕하지 않는다

교사가 말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수업 내용을 적는다


이 교실에서 가장 위험한 신호였다.

세진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 너. 왜 이렇게 조용해?”

한결이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맑았다.

“수업이 재미없어? 아니면 생각이 없어?”

“아니요... 읽고 있어서요.”

“뭘 읽는데?”

“지난 시간에 나온 작품이요. 이해가 덜 돼서…”


교실 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와, 위험하다.”
“완전 순종형이네.”


세진은 바로 반응했다.

“이해하려고 읽는 게 제일 멍청한 독서야.”

아이들이 웃었다.

공기가 풀렸다.

한결은 고개를 숙였다.
상처받은 얼굴이 아니라,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세진은 그 표정을 보고
속으로 무너졌다.


시험

이 학교에는 성적표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성적표가 아무 의미도 갖지 않는다.

시험 문제는 늘 이렇다.

이 개념이 왜 쓸모없다고 느껴졌는가

이 이론을 버리면 무엇이 자유로워지는가

모르겠다고 느낀 지점은 어디인가


정답을 쓰면 감점이다.

교과서를 이해하면

“사고를 위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들은 이 방식을

억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서 공부는
대학교를 잘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수

수업 중반,

세진은 칠판에 질문을 하나 적었다.


[어떻게 하면 성적을 더 망칠 수 있을까?]


이 세계에선 아주 좋은 질문이었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선생님.”

앞줄의 학생이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게 최고 아닐까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각자의 답들이 나왔다.


“그냥 재밌어 보이는 게 있으면 그것만 하면 되는 게 아닐까요?”
“작가의 의도? 그딴 거 신경 안 쓰면 돼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그때,

그 조용한 학생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는요... 대학교를 잘 가고 싶거든요”
그 학생이 말했다.
“이왕이면 의대에 가서 안정적인 고소득 직업을 갖고 싶어요.”


숨이 멎는 듯했다.

“로스쿨은 요즘 별로라던데...”


누군가 중얼거렸다.

“… 전문직?”


한결은 말을 이었다.

“어차피 공부라는 게 성적 잘 받아서 대학교만 잘 가면 그만 아닌가요?”


분필이 손에서 부러졌다.

아이들 몇 명이
이마를 짚었고,
숨이 가빠졌다.


세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성적 잘 받으려고 공부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웃음이 퍼졌다.
위기는 지나갔다.


교사라는 직업

이 세계에서
교사는

학생에게 무시당할수록
좋은 선생님이란 칭호를 얻는다.


자기 학생들이 성적에 관심을 갖지 않을수록

성과가 올라간다.


동료 교사들 모두

최대한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 동안 자기 이야기를 하며

떠들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성적이나 대학교와 상관없이

이 아이들이 공부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만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잘 듣고,

필기를 열심히 하려는,

남의 생각을 외워서 답을 하는 학생.


그런 '문제아'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종례 후

교실에 아무도 없을 때,
세진은 한결의 책상 위에 놓인 찢긴 종이를 발견했다.


[나도 모범생들처럼 자기 생각을 표현하며 성적을 망치고 싶다.

난 왜 암기력만 좋을까, 그냥 좋은 답을 적어서 빨리 이 문제를 지나치고 싶을 뿐이다.

받아주는 답만 달달 외우는 게 최고인 세상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이 세상은 지옥이다.]


그 조용한 학생,

그 문제아의 쪽지였다.


세진은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른 학생들에게 역각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밖에서는
빨간불에 아이들이 웃으며 건너고 있었다.


세상은 분명 거꾸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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