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 <잊혀진 계절>, 심야버스 뒷좌석

꿈이라 부르는 법을 몰랐던 것

by 황준선

장소 — 그때 거기

심야버스라는 게 있었다. 정확히는 '있게 되었다'.

1982년 1월 5일, 37년간 이어지던 통행금지가 해제됐다.

자정이 지나도 거리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면, 통행금지가 풀린 그날 밤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사진이 있다.

새벽 2시에 종로를 걸었다는 신문 기사가 있다.

밤이 열린 것이다.


심야버스의 뒷좌석은, 그래서 새로운 공간이었다.

자정이 넘은 버스.

창밖은 어둡고, 차 안은 형광등 불빛. 앞 좌석에는 졸고 있는 사람,

뒷좌석에는 아무도 없다.


그녀 — 1982년의 스물

서울 시내 인쇄소에서 일하던 그녀는, 야근이 많았다.

통금이 풀리기 전에는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가야 했다.


통금이 풀리고 나서 달라진 건,

야근이 더 길어졌다는 거였다.


통금 해제가 자유가 아니라

노동시간 연장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그녀의 하루가 짐작된다.


끝나지 않는 교정지를 넘기고,

마감을 마치고 나오면 늦은 밤이었다.


밤이었다.

야근을 마치고 심야버스를 탔다.

뒷좌석에 앉았다.


버스는 거의 비어 있었다.

창밖으로 가로등이 지나갔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왔다.


가사 한 줄 — 그때 이렇게 들렸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20대의 그녀에게 이 가사는

알쏭달쏭한 가사였다.


이룰 수 없는 꿈이 슬프다니.

월급을 받고 생계에 보탬이 되는 것 말고는

대단한 꿈을 좇아본 적이 없는 그녀.


아마도 결혼하게 될 그 남자의 아내가 되고 또 엄마가 되겠지.

그냥 그런 게 괜찮은 삶이 아닌가?


야간 버스는 그런 생각들을 담아 달리고 있었다.


같은 가사, 다른 귀 — 2025년의 예순셋

운전 중 라디오에서 또 이 노래가 나왔다.


예순셋에 다시 듣는 이 가사에서,

'꿈'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20대의 나는 꿈이 뭔지 몰랐다.

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먹고사는 것.

그런 게 삶이지,

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순셋이 되어 돌아보면,

그때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다.


말하지 않았을 뿐.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그냥 괜찮은 삶이라고 스스로 정리해 버렸을 뿐.


그 세대 여성들에게 "스무 살 때 꿈이 뭐였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대부분 처음에는 "꿈이요? 없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나씩 나왔다.

해보고 싶었던 일, 가보고 싶었던 곳, 되고 싶었던 사람.


꿈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꿈이라고 부를 줄 몰랐던 것이다.


요즘 사는 게 힘들다는 청년들을 보면,

나는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무언가를 꿈이라 부르는 것은 어색하지만,

그런 거창한 이름이 없어도 괜찮다.


심야버스 뒷자리에서 하던 생각을

자가용에서 하는 것 보면

어딘가에는 잘 도착한 게 아닌지


그리고 70살, 80살이 넘어서 지금을 돌아보면

이름 붙이지 않은 채 이뤄가고 있는 것들이 보일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fMmgz5RS0RE

출처: 유튜브 <이용 - Topic>


원래 이 곡은 조영남에게 줄 곳이었으나 발매 지연으로 이용이 부르게 되었다.

1982년에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최고 인기가수상을 받았고,

80~86년에 조용필을 꺾은 유일한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