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두 아이를 양쪽 품에 안고 잠든 당신에게
2023. 7. 4. (화)
벌써 3년이라니. 매년 결혼기념일에 정신이 없다. 1주년이었던 재작년에는 출산 직후라 꿀떡이 보느라 정신없이 지나갔고, 2주년이었던 작년에는 팔 부러진 꿀떡이 데리고 병원 다녀왔고, 3주년인 오늘도 문화센터에 이사 준비에 정신없이 일상을 보냈네. 이 바쁜 와중에 당신이 건넨 편지를 읽고 미안하고 다급한 마음에 이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하려고 해. 양쪽에 엄마 껌딱지 둘을 안고 깊이 잠든 당신은 아마 새벽에 눈 비비면서 일어나 읽겠지?
요즘 이사 준비하면서 괜스레 생각이 많아. 우리 예전에 결혼 준비하면서 집 구하느라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던 거 기억나? 주말 아침부터 하루종일 돌아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서 둘 다 예민해지고 지쳤었잖아. 그러다 내가 길까지 잘못 들어서 엉뚱한 동네로 들어갔는데, 해는 뉘엿뉘엿 지고 몸도 마음도 지쳐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보자'하며 들어갔던 집에서 우리 벌써 3년을 넘게 살고 있네. 길 잃어서 만난 이 집에서 아이 둘을 낳고 아저씨, 아줌마가 될 줄 누가 알았나.
꿀떡이랑 찰떡이는 여기서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 그만큼 행복했어. 3년 간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사소한 것들이 참 많이 행복했다. 오늘처럼 비 쏟아지던 날,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잔씩 시켜놓고 가만히 앉아 있던 거. 퇴근하고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가는데 맞은편 언덕에서 활짝 웃으며 다가오던 당신이랑 꿀떡이 얼굴. 겨울에 첫눈 온다고 돌도 안된 꿀떡이 옷 두껍게 입혀서 눈 만지게 해 줬던 거. 그리고 꿀떡이랑 목욕하면서 깔깔대면서 웃다가 나와서 방긋방긋 웃는 찰떡이 볼에 얼굴 비비면서 안아줬던 거. 곤히 잠든 당신이랑 두 아이 가만히 지켜보다 나와서 이 편지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연애할 때, 사귀고 일주일도 안 돼서 당신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서, '너무 가볍게 말하지 마라'라고 화냈었잖아? 사실 그때 막연하게 무서웠어. 결혼이 뭔지 잘 몰라서 무섭기도 하고, 막연하게 아직 결혼하기엔 당신도 나도 어리고 미성숙하다고 생각이 들었거든. 그런데 3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당신과 살아오면서-뭐 누군가는 아직 신혼이라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어.
나한테 결혼은 결국 당신이야. 내가 혼자 느끼던 것들을 당신과 함께 느끼고, 혼자 견디던 것들을 당신과 함께 나누고, 혼자 누리던 것들을 당신과 함께 누리고.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당신과 함께하는 게 결혼이었어. 어느덧 두 아이가 태어나 북적북적 네 가족이 되었지만, 나한테 결혼의 시작과 끝은 여전히 당신이야. 혼자일 때는 먼지 털듯 훌훌 털어버리던 외로움, 그리움이라는 감정들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한 것도 당신이랑 결혼하고부터니까 (야근할 때마다 혼밥하면서 당신한테 영상통화 걸었잖아. 사실 내 친구들이 들으면 배꼽 잡고 웃을 일이야. 난 연락받는 것도 귀찮아서 핸드폰 고장 나면 일부러 안 고치던 사람이었다고).
우리 결혼하고 3년 동안 기쁜 일만큼이나 힘들고 또 슬픈 일도 많았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 동안도 그렇겠지? 희로애락이라고 하잖아. 기쁜 일만 있지는 않을 거라는 거 알아. 그래도 두렵지 않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당신이랑 같이 있을 거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나한테는 그 시간은 결국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될 테니까. 지난 3년이 내게 빠짐없는 행복이었던 것처럼.
나 이제 경비아저씨한테 인사도 잘하고, 아직 어색하지만 사람들한테 친절하려고 노력해. 운전하다가 화가 나서 예전처럼 창문 내리려다가도 당신이 '에헤이~'라고 옆에서 말리는 것 같아서 참은 적도 많아. 당신이랑 결혼하고 나서 나는 조금씩 더 친절하고, 더 상냥하고, 덜 화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 당신 이름 뜻처럼, 조금씩 따듯하고 밝아지고 있어. 당신 덕분에.
해처럼 따듯하고 밝은 당신이랑, 그런 엄마를 보고 닮아가는 밝고 따듯한 두 아이와 함께하는 오늘이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행복한 날이야. 몇 번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당신이랑 결혼할 거야. 나한테 결혼은 결국 당신이니까.
부족한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2023.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