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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Aug 21. 2023

무료 나눔인데 무료 배달도 해?

아내 덕분에(?) 부자가 되긴 글러버린 이번 생

2023. 8. 21. (월)


나눔인데 배달도 해?


둘째 찰떡이가 5개월 만에 9.5kg를 돌파하며, 그간 잘 쓰던 바구니 카시트가 꽉 찼다. 깨끗하게 잘 쓴 제품이라 중고로 팔까 고민하다 무료로 나누기로 했는데, 나눔을 신청하신 분이 아직 차가 나오지 않아 직접 들고 가져가시겠다고 하시던 차였다.


"아니. 이 큰 걸 어떻게 들고 가. 이렇게 더운 날.."이라며 혼잣말을 하는 내게 아내가 말한 것이다.


"오빠. 그냥 집으로 가져다 드려."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무료 나눔인데, 무료 배송까지 해?"라며 투덜대는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내는, 말없이 음료 서너 개를 봉투에 담아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출산하신 아내 분거야. 디카페인 두유인데 커피보다 나아. 차 키 식탁 위에 있어. 다녀와."

투덜대지만 아내 말을 아주 잘 듣는다.



당근마켓과의 첫 만남


당근으로 '파는 맛'을 알다

당근마켓에 첫 글을 올린 건 첫째 꿀떡이를 가진 후였다. 아이 맞이(?)를 하며 내 물건들을 팔기 시작했다. 운동기구, 게임의자 등등. 꿀떡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더 자주 접속했다. 잘 쓰고 되파는 것도 있었고, 필요는 한데 길게 쓰지 못하는 물건(예. 기저귀 갈이대)은 저렴하게 사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당근은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글을 올리면 물건이 금방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법무 대신 영업을 해볼까'라는 발칙한(?) 생각을 할 정도였다. 당근 매너온도가 끓어오를 정도인 지금 돌아보면, 일반적인 당근 이용자들보다 상세히 설명하고 가격도 저렴했던 것 같다.

꽤 진심이었던 나의 첫 당근 판매글



무료로 나눈다고? 무료로 배송한다고?


무료 나눔은 바보짓이야

솔직히 처음엔 '무료 나눔'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돈 주고 산거면 천 원이라도 받고 팔아야 된다는 생각이었고, 정 안 팔리면 버리면 되지 굳이 불편하게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일정 맞춰가며 나눌 필요가 뭐가 있나 싶었다. 바보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팔고 사고를 반복하던 어느 날, 내가 첫 바보짓을 하게 된 것도 아내 때문이었다.


나의 당근 인생 첫 바보짓, 비 오는 날 무료 배송

높이가 2m에 가까운 철제 수납장을 판매한다고 글을 올렸는데, 구매자가 차가 없다며 직접 들고 가겠다고 했다. 무게와 크기가 상당해서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데도, 본인은 '남정네'라며 해 보겠다고 했다. 집을 물어보니 차로도 20분 정도 걸리는 꽤 먼 거리였다. 그런데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 그럼 가져다 드리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거운 수납장을 분해해서 트렁크에 낑낑대며 싣고, 무려 주말 아침에 구매하시는 분 집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보니 어린 대학생이었는데,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마침 비까지 와서 그 비를 쫄딱 맞으며 빌라 현관까지 수납장을 옮겨주었다. 대학생은 너무 고마워하며, 사실 너무 필요한 수납장이 저렴하게 올라와서 일단 질러놓고(?) 본인도 '어떡해야 하나' 싶었다고 했다.


'잘 쓰라'며 인사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10만원이 넘는 수납장을 2만원에 넘기면서, 비 오는 날 배송까지 해줬으니 기름값도 안 나오겠다며 투덜대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비까지 오는데 어린 친구가 고생할 뻔했네. 우리가 가져다주길 잘했다. 그치?"


그렇게 처음 받은 장문의 칭찬 글



물건을 통해 사람을 보는 아내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행복을 사는 아내

아내는 그 이후에도 계속 그 바보짓을 했다. 우리 집 쪽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에게는 여지없이 음료수나 간식을 챙겨드렸고, 비싼 아기 침대와 역류방지쿠션을 무료로 나누면서도 '아기가 태어났으니 젖병도 필요할 것'이라며 새 젖병을 함께 챙겨드렸다. 물론 그런 아내 덕분에(?) 나도 오는 날마다 팔자에도 없는 무료 배송을 해야 했다.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내게, 아내는 항상 "사람들이 행복해하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눔할 아기옷을 찾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다, 문득 깨닫게 되었다.


아내는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파는 아니라, 나누고 선물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사고 있었다. 좋아할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며 젖병과 아기 옷, 음료수 등을 준비하고, 예상 못한 선물과 친절에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물건 너머에 있는 돈이 아니라, 그 물건을 받을 사람을 보고 있었다.

우리 집 음료수 주고 남의 집 음료수 받아온 아름다운 상황


부자가 되긴 글러버린 이번 생


아내와 함께 살다 보면 뭐든지 많이 나누고 손해를 본다. 열심히 아끼고 모으고 등쳐(?)도 부자가 되기 어려운 세상인데, 이렇게 나누고 손해 보면 부자는커녕 점점 더 가난해질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우리 집 아이가 아내를 닮았으면 좋겠다. 꿀떡이, 그리고 찰떡이. 아이가 아내처럼 세상을 바라볼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바보짓'이라고 말한 아내의 행동들은 사실 지혜로운 것들이었다. 아내는 물건 너머 사람을 먼저 볼 줄 알았고, 돈 너머 행복을 우선할 줄 알았다.


나는 요즘 당근을 통해 아내에게 인생을 배운다. 당근으로 돈을 벌던 나는, 그 물건 너머에 사람이 있는 것을 몰랐다. 당근을 통해 번 돈은 내가 아내보다 많을지 몰라도, 당근을 통해 주고받은 행복의 크기는 아내가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당근으로 부자 되기는 글렀고, 아내 따라서 행복이나 계속 불려보기로 했다. 아이들도 빨리 컸으면 좋겠다. 무료 나눔이랑 무료 배송 같이 다니게. 아이들이 크면서 이 행복한 바보짓을 함께하면, 행복이 네 배가 되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설레고 지갑 떨리는 일이다.

현실은... 방해만 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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