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옛날 애들이 키운다"
2023. 2. 3. (금)
오늘도 아내가 점심 약속이 있어 아이와 둘이 밥을 먹었다. 원래 아내가 외출하는 날에는 아이 점심에 대한 대략적인 브리핑(?)을 해주곤 하는데, 오늘은 고맙게도 고구마 식사를 미리 준비해 주었다. 아내가 준비해 준 고구마에 더해서 유아용 짜장밥과 치즈, 그리고 블루베리로 무사히 점심 식사를 마무리했다.
확실히 아내가 빠지고 우리 둘이 밥을 먹으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첫째 그릇에 식사를 준비해 주고 함께 간단한 식사기도를 하면 한동안은 서로의 밥에 집중한다. 아이의 '오물오물' 소리와 함께 뽈록해진 볼이 귀여워 항상 내가 먼저 정적을 깨고 '맛있어?' '우유 줄까?'라며 말을 걸어보지만, 아이는 '도리도리' 고개를 젓거나 끄덕일 뿐 계속 자기 밥에만 집중하곤 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우유나 그릇에 새겨진 모양을 가지고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서로 장난치며 웃는 것이 아내가 없을 때 우리만의 식사 일상이다.
첫째 아이는 밥 먹을 때 영상을 보지 않는다. 아내가 식탁예절이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식탁 앞에서 서로 대화를 하거나 음식에 집중하는 것 외에 휴대폰 같은 것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물론 이 원칙은 결혼 전후로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는데, 대학교 이후로 혼자 밥을 먹으며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던 나는 이런 아내의 원칙이 당황스럽긴 했다. 하지만 한 번 익숙해지고 나니 식사시간마다 웃음꽃이 피고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거워서 아내 말을 잘 듣고 있다.
그런데, 아이와 여행을 다니다 가끔 리조트 또는 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때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연령을 불문하고 식탁에 세워진 휴대폰을 보며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 아마도 어른들이 대화하기 위해 아이들을 영상에 묶어(?) 놓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아내와 내게는 너무 생소한 장면이었다.
휴대폰이나 아이패드가 없던 2~30년 전 우리 부모님들은 어떻게 하셨을까. 엄마는 '어렸을 때는 아예 사람 많은 식당에 안 데리고 다녔지'라는 합리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그때는 유아용 의자나 유아용 식기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고, 그런 것을 식당에 구비해 놓는다는 개념은 더더욱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식당을 가고 하는 때에는 서로 미안해하고 또 이해해 주며 '어찌어찌' 잘 살았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이른바 '노키즈 존'이 생겨나버린 요즘 세상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식사시간에 영상을 틀어주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은 아이마다 다르고 또 가정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첫째는 어린이집을 다녀본 적도 없고 조부모님 손을 타본 적도 없고 온전히 집에서 가정보육만 받은 아이라 영상을 안 보는 것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만약 집에서부터 식사 중 영상을 보던 아이에게 갑자기 외부에서는 보지 말라고 하면 그것도 황당한 일일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 시간에 가족이 서로 교류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어린아이가 있을 때는 식사하는 그 아이를 관찰하기 좋은 시간이기도 하고, 아이가 식사 중에 나누는 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 분위기에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의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만 해도 아내와 내가 대화하다 웃으면 아이도 같이 웃고, 내가 진지하게 회사 얘기를 하면 아이가 내용도 모르면서 '그만!'하고 손을 내저어 아내와 내가 빵 터져 웃곤 하니 말이다. 회사 얘기는 아기에게도 재미없고 지루한가.
'요즘 애들은 다르다'라고 하기엔, 요즘 애들은 '옛날 애들'인 우리들이 키운다. 휴대폰 영상 없이도 다 잘 먹고 잘 자라온 우리들, '옛날 애들'이 부모로서 방향과 기준을 잡아주기 시작한다면 '요즘 애들'은 잘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 '요즘 아기'도 아직까지는 잘 따라오고 있으니 말이다. 나름 잘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지 식사 중에 떼를 쓰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식사 중에 참을 인자를 열 번도 더 새기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