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월 아이에게 '사랑'이란
2023. 3. 18. (토)
바쁘고 심심한 육아의 일상
오늘은 토요일이라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오시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첫째와 아침식사를 하고 집안일을 했다. 요즘 첫째와 양치하는 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아내와의 합동 작전으로 아침 양치는 무사히 해냈다. 물론 옷을 2번 갈아입혀야 했다. 하루 두 번, 아이 양치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나의 부모님도 내가 어렸을 때 이렇게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을 가르치느라 힘이 드셨겠구나 싶은 요즘이다.
수유를 끝낸 아내가 이제 좀 밥을 좀 먹으려는데 잘 누워자던 둘째가 울기 시작했다. 서둘러 안아 달래려다 이상한 자세에서 잠이 들었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울지 않아 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런데 내가 둘째를 안으면 첫째가 조금 예민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첫째가 '찰떡이 내려놓고 나 안아'라며 애교를 부린다. 조금 더 달래다 둘째를 조심히 침대에 내려놓고 첫째와 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오전이 다 갔다. 딱히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바빴다. 육아의 일상이 그런 것 같다.
아빠 샤랑해요
점심에는 아내가 둘째 수유를 하며 같이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식탁 앞에서 오손도손 밥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첫째가 낮잠을 잘 시간이 되었는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둘이 생기니 새로운 점이 있다면 투정을 번갈아서 부린다는 점이다. 간신히 둘째가 진정이 되면 그때부터 첫째가 떼를 쓰기 시작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약간 돌아버릴 것 같은데 멘탈을 부여잡고 첫째를 달래려 함께 방에 들어왔다.
첫째 꿀떡이는 요즘 신생아 모빌에서 나오는 음악을 좋아한다. 모빌이 돌아가면서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데, 그 음악에 맞추어 발레 같은 이상한(?) 춤을 추곤 한다. 마침 나도 기운이 남아있지 않던 차에 모빌로 음악을 틀어주고 방바닥에 누워 가만히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때, 혼자 왔다 갔다 하며 놀던 첫째가 갑자기 누워있던 내 팔 속으로 폭 들어오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아빠. 샤랑해요.'
사랑
태어난 지 이제 22개월이 갓 지난 첫째 꿀떡이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피곤은 온데간데 없이 너무 놀라고 기쁜 마음에 내 품에 안긴 꿀떡이에게 '아빠 사랑해?'라고 재차 물으니, 꿀떡이는 부끄럽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대답 없이 방에서 뛰쳐나갔다.
사랑한다니. 아내와 내가 첫째 꿀떡이에게 자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어린아이가 부모인 내게 '사랑한다'라고 표현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 아이에게 사랑은 어떤 것일까. 세상에 태어나고 자란 지난 22개월 간, 아니 더 정확하게는 엄마 뱃속에서 자란 10개월까지 포함한 32개월 간 이 아이가 경험하고 배워 오늘 내게 표현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겁고 깊이 고민하면 한없이 무겁고 깊이 들어갈 수 있고, 가볍게 생각하면 또 한없이 가볍고 단순하게 다가갈 수도 있는 것 같다. 사람마다 사랑을 각기 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보는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일평생을 헌신적으로 섬기는 모습을 '사랑'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어린 날 좋아하는 이성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때도 '첫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마다는 '사랑'이 무엇인지 각기 다른 정의를 가질 수 있겠으나, 종교 경전인 성경에서는 사랑을 다음과 같이 정의(定義)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4-7절, 개역개정)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정의(定義)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자주 되새겨볼 만한 것 같다. 특히 문구가 '오래 참고'로 시작해서 '견디느니라'로 끝나는 점이 큰 공감이 가는데,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부모에게는 인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첫째인 꿀떡이를 키워보기 전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배변이나 양치, 식사 같이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내 앞에서 밥을 먹기 싫다며 울며 떼쓰는 이 작은 아이에게 작게는 우리 가정의 규칙, 크게는 이 세상의 규칙을 하나하나 가르치기 위해서는 꽤나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다. 또한, 단순히 '가르치고 안되면 마는 것'이 아니라 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가르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작고 어린아이지만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며 소리를 지르거나 강제하지 않고 교육을 이어나가다 보면, 정말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이른바 '현타'가 하루에도 수십 번 온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뼈저리게 느끼고 배워나갈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막막한 마음도 있고, 동시에 이 어린아이들이 앞으로 느끼고 배우는 사랑의 많은 부분이 부모인 나로부터 올 것이라 생각하니 무거운 책임감도 느껴진다. 앞으로 더 많이 인내하고 또 더 많이 존중하며 아이들을 키워 나가야겠다.
또,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더 많이 표현해야겠다. 오늘 오후 꿀떡이의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에 내 피곤함이 다 날아간 것을 보면, 사랑의 표현은 그 자체로 힘이 있는 듯 하니 말이다. 더 많이 인내하고 존중하며 속으로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하며 날이 갈수록 더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S.
이 글을 쓰던 도중 첫째 꿀떡이가 낮잠에서 깨어 우는 통에 후다닥 방에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꿀떡아 사랑해'라고 말했다. 보통 잠에서 깨면 엄마를 데려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꿀떡이인데, 아빠가 난데없이 '사랑해'라고 하니 벙 찐 표정으로 나를 끔뻑끔뻑 쳐다보다 다시 잠에 들었다. 덕분에 다시 기어 나와 이 글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거 봐. 사랑 표현은 힘이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