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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Apr 23. 2023

"집에서 꾸미고 있지 못해서 미안해"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

2023. 4. 23. (일)


어제 아내가 미용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둘째 임신과 출산으로 한동안 가지 못했던 미용실이라 선뜻 다녀오라 했다. 하지만 그 말인즉 내가 3시간 남짓 동안 두 아이를 혼자 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둘째는 아내가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배고프다고 울어재꼈고, 그 와중에 첫째는 본인과 클레이 놀이를 하자고 한 손을 잡아끌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버티다 결국 둘째를 안은 채로 첫째 손을 잡고 나가 놀고 들어왔다.


누나의 병원놀이에 강제로 참여해서 고통받는 찰떡이 + 빨래만 널으려하면 울어대는 찰떡이 + 오랜만의 외출에 신난 꿀떡이


아이 둘을 혼자 보는 건 너무 어려웠다. 겨우 3시간 남짓이었는데 영혼이 탈곡된 기분이었다. 이제 50일을 갓 넘긴 둘째는 '아 몰랑 나 배고파아아아아아아!!!!!!!!!!!!!!'를 시전 하시는 게 본인의 임무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아직 만 두 살도 안된 첫째가 내게 놀아달라고 하는 것도 자연의 섭리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그 와중에 둘 다 배변도 열심히 해서 기저귀도 여러 차례 번갈아 갈고, 꿀떡이는 뛰어다니며 여기저기서 사고도 열심히 치셔서 중간중간 집안을 쓸고 닦고 치우고를 반복해야 한다. 그러다 잠시 한숨을 돌리려 고개를 들면 쌓인 설거지와 세탁기에 남아 있는 빨래들이 나를 끔뻑끔뻑 쳐다보며 '대체 우리는 언제..?' 하며 눈치를 본다. 쓰다 보니 어제 생각이 나서 PTSD가 올 것 같다. 진심 땅으로 꺼지고 싶음.


그런데, 미용실에서 예쁘게 머리를 하고 돌아온 아내를 보니 재미있는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서 꾸미고 있지 못해서 미안해"


육아휴직을 하기 전, 그러니까 첫째 꿀떡이가 만 1살도 되기 전의 일이다.


꿀떡이가 태어나고 아내는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상하게 내 눈치를 봤다. 그러다 한 번은 퇴근한 나를 반기면서 '집에서 꾸미고 있지 못해서 미안해. 꿀떡이가 보채서...'라며 말을 흐리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물으니, 그제야 맘카페 같은 육아 커뮤니티나 심지어는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자들은 아무리 집 안에서라도 여자가 매일 꾸미고 이른바 '신비감'을 남겨놓지 않으면 사랑이 식는다고 들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본인은 아니라고들 해도 남자들은 다 똑같다며.


당시 그 얘기를 듣고 정말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아마도 이런 내 황당함은 내가 자란 가정의 분위기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는데, 우리 가족은 집 안에서만큼은 가장 편하고 날 것(?)의 모습(예를 들어 몸빼바지)으로 있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집에서 예쁜 옷을 입거나 화장을 한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 모두 '엄마... 무슨 일 있어?'라며 걱정했을 것이다. 그렇게 신비감은 현관문 앞에서 툭툭 털어 버리고 들어오시던 우리 부모님은 아이 둘 낳아 잘 기르시고 40주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매일 같이 카페를 가시거나 여행을 다니시는 등 어딜 가나 세트 메뉴로 사이좋게(라고 쓰고 티격태격이라고 읽지만) 살고 계신다.


이런 가정에서 살아온 내게 아내의 저 말이 얼마나 충격이었겠는가. 집에서 꾸미지 않는다고 사랑이 식어버리는 '희귀종'이 있다는 소식도 아니고, '모든 남자가 다 똑같다'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부끄럽지만 우리 가족은 누나와 내가 시집, 장가가기 직전까지도 거실에서 놀다가 저렇게 잠옷 차림으로 잠들곤 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사람마다 '사랑'을 정의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사랑', 특별히 부부간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집에서 외모를 꾸미지 않는다고 식어버리는 사랑이라니.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


아내는 연애할 때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며 섭섭해했다. 남들은 다 쉽사리 말하는 '사랑'이라는 말 때문에 내내 미안했지만, 내게는 그 말을 뱉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서른이 그때까지도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한다'는 감정 표현이야 가득 찬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니 단순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조금 달랐다. 나는 연인 간의 '사랑'이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책임감과 의지가 담긴 무거운 말이라고 각했다. 그래서 연애를 많이 못한 것 같다 (눈물 스윽).


그러다 10월의 어느 날 저녁, 바다 앞에 나란히 앉아 아내에게 '사랑한다'며 프러포즈를 했다. 오랜 고심 끝에 아내에게 말한 사랑은 '남은 내 평생을 한 사람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곳을 가겠다'는 무거운 다짐이었다. 그렇기에 내 프러포즈는 아내 손에 끼워주던 반지의 가격이나 예식장의 화려함 따위로는 재단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은 순간이지만, 내 고백은 남은 일생에 대한 것이었으니.


내게 있어 부부간의 사랑은 한순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일생에 대한 것이고, 지금까지 각자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함께 쌓아 올려 갈 것에 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당신이 이렇기에 사랑한다'와 같이 일시적이고 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당신이기에 사랑한다'와 같은 조건 없는 다짐에 가까웠다.


프러포즈 직후.  정작 아내는 '피곤해 죽겠는데 바다는 왜 가나'싶었다고 한다. 어쨌든 서프라이즈 성공...(눈물 스윽)



"내 옷만 깨끗해서 미안해"


육아휴직 이후 거의 매일, 아니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왼쪽 어깨에는 둘째 찰떡이의 분비물들이 한가득 묻어있다. 배에는 항상 고추장이나 아이 음식이 묻어있기도 하고. 육아를 하다 보면 아무리 옷을 자주 갈아입어도 어쩔 수 없다. 문화센터만 하더라도 시간에 맞춰 가려면 아이들은 예쁘게 꾸미더라도 나는 산발로 뛰어나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머리나 감고 나갈 수 있으면 다행이랄까.


거울도 안 본 채 저런 차림으로 외출을 했던 처참한 기억 (Feat. 고추장)


내가 육아휴직을 하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육아를 하는 입장과 현실을 아내와 '함께'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 휴직 전에도 아내가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있을 때 딱히 이상하게 여긴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후줄근한 옷만 봐도 아내가 견뎌냈을 하루가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일과 사람에 치여 집에 돌아온 나의 지친 어깨와 쳐진 입꼬리가 치열했듯, 하루종일 육아와 집안일에 치여 집에서 나를 반기는 아내의 꾸미지 않은 모습 또한 치열했던 것이다. 그래서 현관에서 아내가 화장도 못하고 지저분한 티셔츠를 입은 채 나를 반긴다면, 내가 해야 하는 말은 '좀 예쁘게 입을 수 없어?'가 아니라 '내 옷만 깨끗해서 미안해'이어야 한다. 우리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부부이기 때문에.



후줄근함을 넘어 치열함을 볼 수 있기를


혹시 일을 마치고 들어온 남편의 지친 한숨소리 또는 육아를 하느라 후줄근한 아내의 옷을 마주할 때 본인의 얼굴이 찡그려진다면, 본인에게 '결혼'은 무엇이고 '부부'는 무엇이며 또 그 안의 '사랑'은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회사일과 육아라는 각자가 하루를 보낸 일상의 종류가 다를지언정, 그런 서로의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부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친척이나 친구 등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부부라면 서로의 겉모습-그게 일에 지친 모습이든 육아로 후줄근한 모습이든- 너머에 있는 치열함을 알아보고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P.S.


오랜만에 결혼식 영상을 함께 보며 본인들이 그 많은 하객들 앞에서 어떤 서약을 했는지 다시금 되새겨 보면 좋을 것 같다. 분명 우리 모두는 결혼식장에서 남은 여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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