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달에 장모님 생신이 있었는데 첫째가 아파 찾아뵙지 못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지만 장모님 혼자 생신을 보내신 것이 아내는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아내는 외동딸이고, 장인어른도 몇 해 전 하늘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당신 친정 언제 가지?'라고 계속 운을 띄웠던 것이었는데, 아내는 첫째의 몸상태와 더불어 둘째가 어린것이 부담되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 다시 물어본 것이다.
나: "장모님 댁 언제 갈 거야?"
아내: "어.... 엄마 쉬는 날에 가거나... 아니면 재택할 때 점심이나 먹고 오거나 뭐..(우물쭈물)"
나: "그래? 그럼 언제 재택이신지 물어봐봐."
아내: (장모님과 카톡 후) "오늘이라는데?"
나: "그래? 그럼 오늘 가서 점심이라도 먹고 올까?"
아내: "어? 그럴까..?"
그렇게 우발적으로 서둘러 신생아 카시트를 꺼내고 간소한 짐을 챙겨 장모님 댁을 다녀온 것인데, 아내는 그 과정에서 내가 '친정 방문을 지속적으로 물어봐준 것'이 고맙다고 했다.
아내는 고맙다고 했지만 내겐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의 행복은 나와 우리 가정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둘째 찰떡이 태어난 직후에 보시고 무려 50여일만에 두 아이를 보신 장모님 (Feat. 찰떡이의 '여긴 어디 나는 누가')
'고마우면 행복해라.'
육아의 본질은 사랑
나는 육아의 본질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두 남녀가 사랑해서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이 육아라고 믿는다. 그런데육아에서의 사랑이 단순히 부모가 아이를 '내리사랑'하는 것만을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육아에서의 사랑은아이의 부모인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아이의 탄생이 두 남녀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아이가 소속되어 자라날 첫 공동체인 '가정' 또한 그 부부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거나 엄마 또는 아빠가 불행한데아이만 행복한 가정은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우며 부모가 꾸린 가정의 모든 부분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갓 2살이 된 꿀떡이만 해도 아내가 울면 그 분위기를 가장 먼저 알고 '엄마 괜찮아요?'라고 묻는다. 그러니까 여보 제발 슬픈 드라마 그만 보라고... 내가 울린 것 같잖아...
결국 육아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행복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사랑과 행복을 보고 경험하고 누리며 배워가는 아이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육아는 아이의 출생부터가 아니라 사랑하는 부부의 행복한 순간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일 수도 있겠다. 흔히들 말하는 '준비된 부모'란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부부를 의미하는 것이다.
부부가서로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아내 또는 남편이 행복한 것은 육아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다.
꿀떡이가 뱃속에 있을 때 퇴근한 나를 몰래 데리러 나오다가 딱 걸린 아내. 우리의 육아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는지도.
아내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은 같은 말이다.
그래서 내게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내를 희생'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남편인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우리 가정에서 아내의 행복은 육아의 가장 기본이자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내가 뭔가 고민이 있으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결해야 하는 사람도 남편인 나였다. 꿀떡이와 찰떡이가 우리의 고민을 함께하려면 아직 너무나 많은 세월이 남았으니.
그러니 아내의 마음이 불편한 상황에서 장모님 댁에 빨리 방문하는 것은 내게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의 행복은 아이의 행복이자 나의 행복이고 우리 가정의 행복이기 때문에.
반대로 생각하면 엄마가 행복한데 아이가 불행할 수 있을까. 엄마의 행복은 자연스레 아이에게 흘러갈 텐데 말이다.
"KPI부터 챙기자."
회사에서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를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라고 불렀다. KPI는 승진, 인센티브와 직결되므로 매년 말이면 다음 해 KPI 항목/기준을 짜는 게 부서별 업무일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