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지자체 보건소 소속 간호사 선생님이 방문하셨다. 상담이 끝나자마자 첫째 꿀떡이와 문화센터를 갔다 온 후에도 집 앞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았다. 그러다 필요한 것들이 생각나 인근 마트에 갔는데 다 사고 보니 한 보따리였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는데, 마침 피곤해진 꿀떡이가 안아달라고 보채는 통에 한 손에는 짐을 한가득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꿀떡이를 안은 채 언덕을 오르게 되었다. 그렇게 헉헉거리며 올라가다 보니 숨은 차고 팔은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너무 힘든데 아이는 좋다고 주변을 구경하기 바빴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서 '이제 좀 살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문득 아내 생각이 났다.
아내의 '힘들었다'는 말의 무게
내가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는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며 아내의 일상을 듣곤 했다. 아내는 종종 '언덕에서 꿀떡이가 안아달라고 해서 끙끙거리며 간신히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힘들었겠네'라며 웃어넘기곤 했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직접 경험해 보니, 경사가 생각보다 너무 가팔라서 신체건강한 남성인 나도 아이를 안고는 오르기가 너무 어려운 길이었다. 아내는 원래 나보다 힘도 약한 데다 출산 후몸도 성치 않았을 텐데 아이와 함께 이 길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했을까.
'오늘 힘들었다'는 아내의 말의 무게는 한없이 무거웠는데 '힘들었겠네'라는 내 대답은 한없이 가벼웠구나 생각이 들어서, 계단을 다 올라집에 들어가는 길에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육아휴직, 아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걷는 중
그러고 보면 지난 100여 일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내가 경험한 모든 일들은 아내가 이미 혼자 해왔던 것들이다. 아이와 둘이 놀이터에 가서 놀고,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다녀와 병간호를 하고, 때에 맞게 밥을 해서 먹이거나 잠을 재우고, 마트에 다녀오는 등의 일상들. 모두 지난 2년 동안 아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 오던 것들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간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부분을 '아내의 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고, 육아휴직을 하고도 이런 하나하나의 일상을 경험할 때마다 내가 '해내었다'며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내에게 종종 자랑도 했으니 참 우스운 일이다.
육아휴직 후 약 100일, 나는 아직도 앞서가는 아내의 걸음을 허겁지겁 따라가는 중이다. 남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내가 느낀 그 무거움을 나도 온전히 다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내의 일상이 혼자 무거운 것이 되지 않도록 내가 더 잘해야겠다.
그리고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아내의 권유였는데, 나는 첫째를 재우고 아내는 둘째 수유를 하며 다른 방에서 잠을 자게 되어 본의 아니게 각방 생활을 하는 중이다. 새벽에 일어나 둘째 수유하며 이 글을 읽을 아내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여보. 아까는 내가 집에 들어와서 당신 얼굴 보고 눈물이 날까 봐 말을 못 했는데,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네. 그동안 당신 혼자 해내온 매일의 일상들이 가파른 언덕만큼이나 힘들었겠구나 싶어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현관문이 닫히면 절로 한숨부터 나오는 이 가파른 일상들을 당신은 나한테 '쉽지 않았지만 괜찮았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해 왔구나. 당신이 '나는 괜찮으니 하지 말라'던 육아휴직을 하고 100일이 조금 더 지난 이제야 이 가파름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 나도 참 어리고 갈 길이 멀다.
올해로 우리 결혼한 지 4년 차, 얼결에 부모가 된 지 3년 차인데 벌써 아이 둘을 품고 살아가네. 앞으로 어떤 길들이 우리 부부 앞에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언덕길마다 내가 앞서 걸을게. 혹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언제든지 망설이지 말고말해줘. 항상 고맙고 미안해. 사랑해.
출산 직후에도 꿀떡이와 오르던 언덕길. 사진 바로 밑부터 깎아지듯 가파른 언덕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