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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May 19. 2023

육아휴직 덕분에 행복합니다

아빠로서의 행복을 위해서 당연했던 육아휴직 

2023. 5. 19. (금)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


그제 아침을 먹는데 베란다를 통해 스며든 바람이 선선하니 좋았다. 햇빛은 강했지만 오랜만에 공기도 좋고 맑은 날이 아까워 두 아이를 데리고 계획 없이 근처 아웃렛으로 향했다. 급하게 도시락도 싸고 카시트를 두 개나 챙겨서 시끌벅적 떠난 나들이였는데, 날씨도 완벽하고 평일 오전이라 사람도 없어 첫째 꿀떡이가 너무 신나 했다.


그림에서도 느껴지는 첫째 꿀떡이의 신남 (Feat. 바람이 엄청 불어서 나중에 파라솔이 뽑혀 날아가버림)
동화책에서만 보던 해바라기를 꿀떡이가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감사하게도 꽃집 사장님께서 물뿌리개를 쥐어주셨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거의 없던 텅 빈 식당가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유모차에서도 곤히 잠든 둘째와 '냠냠' 소리를 내며 조용히 도시락을 까먹는 첫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내한테 한 말이었다.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




육아휴직, 너희로 인해 내가 행복했던 기억


나의 희생인 줄 알았던, '대단했던' 육아휴직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면 '대단하시네요'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말이다. 아무래도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게 흔치 않은 상황에서 이른바 '커리어'적인 손실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더 현실적으로는 재정적인 부담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다 떠나서 '육아의 힘듦'을 마주하고자 한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용기를 말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다 맞는 말이다. 이전 글에서도 썼듯 나는 조기 진급을 한 직후 육아휴직을 신청했기에 커리어적인 손실이 분명 있었고, 재정적으로는 회사에 다닐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해졌다. 그리고 전업 육아는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신청할 무렵에는 굉장히 결연한 마음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이 정도 희생은 하겠노라는 뭐 그런. 그래서 회사에서 인수인계도 열심히 하고, 대출금도 최대한 상환하고, 그토록 꺼려하던 마이너스 통장도 준비했다. 


그런데 실제 육아휴직을 하고 막상 5개월 남짓 살아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사실은 나의 행복을 위해서, '당연했던' 육아휴직


내 주변에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지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육아휴직이) 좋은데... 현실적으로 여건이 안되니까.' 


그런데 막상 하고 보니, 나의 육아휴직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하기 위한 부모로서의 희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로 인해 가장 행복한 것은 나였다. 즉, 육아휴직은 단순히 회사에게 빼앗겼던(?) 아빠를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선물같이 소중한 존재임을 부모인 내가 깨닫는 과정이었다. 


육아휴직은 아빠인 내가 선물 같은 이 아이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아이들이 내게 선물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 휴직 기간



영원히 변치 않을, 그리고 잊지 못할 지금


육아휴직의 현실적인 부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우리 집처럼 둘 다 벌이를 하지 않는, 이른바 '완전 육아휴직'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아내와 내가 맞벌이일 때의 합산소득이 결코 적지 않았기에 체감되는 정도가 더 심하기도 하다. 휴직 직전까지 최대한 준비했다고는 하나, 육아휴직급여와 국가에서 나오는 여러 수당들로 살아가는 지금은 맞벌이일 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솔직히 회사에 신청한 1년을 다 채울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00번을 돌아가도 다시 육아휴직을 쓸 것이다. 


아내 또한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도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중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우리 네 가족의 소중한 순간들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 네 가족만의 기억들 말이다.


물론 각각 만 두 살, 3개월이 채 안 된 꿀떡이와 찰떡이는 지금의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내와 나는 우리 네 가족이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아침잠에서 덜 깬 아내와 내 손을 끌며 "해가 뿅 떴어요. 거실에 나가서 놀쟈요!"를 외치던 꿀떡이의 장난 어린 미소, 입을 뻐끔대며 낮잠을 자다가 스르르 잠에서 깨어 '꺄울'하며 눈웃음을 치던 찰떡이의 통통한 얼굴, 분수대에서 익룡처럼 소리를 지르는 꿀떡이를 안고 물로 뛰어들던 순간 등등. 휴직 전에는 여유도 시간도 없어 온전히 바라보고 누리지 못했던 아이들과의 소중한 순간들을 눈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었다.


결국, 육아휴직 덕분에 가장 행복한 것은 아빠인 나였던 것이다.

 

네 가족이서 함께했던 꿀떡이의 두 돌 생일파티
어딜 가나 넷이서 함께 (Feat. 야외활동 좋아하는 누나 둔 덕에 고통받는 신생아 찰떡이)
엄마와 아빠 번갈아가며 비도 실컷 맞고 흙도 실컷 만지며 건강히(?) 크고 있는 꿀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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