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천동잠실러 Feb 01. 2023

아빠 육아휴직이 아닌 남편 육아휴직

아내의 '버티는 일상'에 대하여

2023. 1. 31. (화)


아이가 태어나고 회사에 다니며 저녁 약속을 잡은 적이 거의 없다. 평소에 야근이 워낙 많은 편이었어서 야근이 없는 날이면 집으로 바로 가는 편이었다.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집에 가서 아이를 씻기고 놀아줘야 아내가 하루 중 처음으로 '한숨 쉬어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눈치가 보였다. 비아냥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일찍 가네?'라며 눈치를 주는 경우도 많았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의 퇴근이 늦는 것은 아내의 퇴근이 늦는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빠르면 오후 6시 반이 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었다. 


집 현관문을 열면, 아이는 활짝 웃으며 아빠를 반기고 아내는 다크서클이 거의 무릎까지 내려왔으면서 '수고했어요. 고생 많았겠다'라고 말해주곤 했다. 그 이후, 서둘러 씻고 간단한 녁을 먹은 아이를 씻기고 놀아주었다. 잠깐 사이, 아내는 소파에 눕거나 의자에 앉아 마치 뜨거운 철이 식어가듯이 가만히 앉아 휴대폰을 뒤적이거나 멍을 때리곤 했다.


당연히 나도 쉽지 않았다. 


정시에 퇴근하기 위해서는 정규 근무시간에 단 한시도 쉬어갈 수 없었다. 정시에 집에 가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일을 해야 했다. 점심도 아까워 3시까지 일을 하다 나중에 혼자 샌드위치로 때우는 일도 있었고, 커피타임이랄 것도 없이 편의점에서 2+1을 사 와 냉장고에 넣고 대낮에 커피를 들이부어가며 일을 했다. 120%의 효율을 내야 100%에 해당하는 정규 시간 내에 끝내고 집에 갈 수 있었다.


내 육아휴직 전, 아내도 나도 둘 다 '버티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게 서로 하루를 버티다 현관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 애써 웃으며 '오늘 고생했다'라고 말해줄 때, 그제야 '버티는 일상'이 끝나곤 했다.




둘째 아이가 찾아오고 아내의 배가 조금씩 불러오며 그 버팀이 힘에 부치는 것이 보였다. 


첫째 아이는 점점 활동성이 강해지고 아내는 몸이 점점 무거워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는 '혼자 할 수 있다'고 했지만 퇴근 후 아내의 표정을 보면 더 이상 이런 일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내가 육아휴직을 결정한 이유는 아이보다는 아내였다. 아내가 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지 않았으면 했다.


육아휴직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전 글에도 간략히 썼지만, 일적인 측면과 더불어 재정적인 측면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굉장히 많고, 전체적인 커리어 측면에서의 손실도 감수해야 하며,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한국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대부분 아직 익숙지 않아, 몇몇 사람들의 편견 담긴 시선이나 비아냥이 있더라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고민을 3개월 이상 했는데, 그래도 결론은 육아휴직이었다.




육아휴직을 한 지 벌써 40일 정도가 지났다. 


오늘, 평소처럼 밤에 침대에 누워 아내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나는 아이의 발가락을 만지고 있는데, 문득 생각하니 내 육아휴직 전에는 이런 여유가 없었다.


퇴근 전에는 내가 아이를 '맡아' 아이가 비몽사몽이 될 때까지 책을 읽고 놀아주다가, 아이가 졸려서 엄마를 찾으면 그동안 쉬던 아내가 아이를 '다시 맡아' 재우곤 했다. 그 틈에 나는 거실로 나와 회사에서 온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답장 또는 통화를 하기도 했으니, 휴직 전 셋이서 함께 잠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우리의 '함께하는 일상'은 훨씬 여유 있고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셋이 함께하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지니, 역설적으로 셋 중 하나가 빠진 일상도 더 자연스러워졌다.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하던 첫째도 이제 나와 둘이 더 잘 있고,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하면 먼저 손을 흔들며 빠빠이를 해주곤 한다.




무엇보다, 내가 육아휴직을 한 후 아내가 전보다 훨씬 많이 웃고 여유를 찾게 되었다. 


아내의 하루가 더 이상 아이가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버티는' 일상이 아니게 되었다. 아이의 하루가 아내만의 하루가 아니라 우리의 하루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거 하나면, 내가 육아휴직을 결심한 소기의 목적은 벌써 달성했다.


그런 면에서, 남자의 육아휴직을 요즘 정책적으로 '아빠 육아휴직'이라고 한다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사실 '남편 육아휴직'이라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잠들기 전 동화책 구연 시간을 틈타 첫째 아이 발을 만지며 힐링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