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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3] 결이는 복잡한 보호자가 되었다

Rubato, 일시적으로 재량껏 빠르거나 느리게

by 컬러코드

Rubato, 전반적인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곡의 어느 부분에서는 일시적으로 재량껏 빠르거나 느리게



Allegro – 빠르게 흐르는 순간

“보호자는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세요.”

누군가의 말이 들렸다. 하지만 결은 몸이 굳어버린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가 저 안에 있는데, 나는 여기 있어야 한다고?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하는데? 결은 허공에 손을 뻗었지만, 엄마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병원의 소음이 결을 휘감았다.

삐-삐-삐. 심박계를 알리는 기계음.

“다음 환자 들어오세요.” 접수창구에서 들려오는 단조로운 목소리.

“저기, 우리 순서 언제예요?” 초조한 보호자의 다급한 질문.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 뛰어가는 의사, 울음을 참고 있는 아이. 병원은 쉼 없이 움직였다. 결의 심장도 그 속도에 맞춰 빨라졌다.

엄마는 괜찮을까?

그러나 그 순간, 새로운 문제가 다가왔다.



Adagio – 느려지는 시간과 보호자의 문제

결은 손을 꼭 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빠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려했지만, 엄마의 가방에 있었다. 접수창구로 달려가서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줄이 너무 길었다. 어른들 틈에 끼어 ‘저기요’라고 말하기엔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주변의 보호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한 남자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떤 아이는 지루한 듯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공간에서 보호자는 단순한 ‘기다리는 사람’ 일뿐이었다.

결은 목이 타들어 갔다. 물을 마시려 했지만, 자리를 비우면 혹시 엄마가 나올까 봐 움직일 수 없었다.

의자가 딱딱해서 오래 앉아 있기 힘들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소리가 없는 자막 뉴스가 흘러나왔지만, 결은 무슨 말인지 집중할 수 없었다.

한 할머니가 접수대 앞에서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직원의 목소리가 보호자 대기실까지 닿지는 않았다. “이름이 뭐라고요? 몇 번이시죠?” 할머니는 몇 번이고 다시 되물었고, 직원은 조금 지친 듯한 표정이었다.

어떤 아저씨는 자판기 앞에서 카드를 꺼냈다가, 동전만 된다는 표시를 발견하고 다시 돌아섰다. 동전을 구할 곳이 없어 한참을 서성였다.

저쪽에서는 한 여자가 어린아이를 안고 분주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아이는 칭얼댔지만, 기다리는 동안 마땅히 쉴 공간이 없었다.



Rubato – 순간적으로 흐름이 바뀌는 시간

“보호자분, 환자분이 병실로 옮겨집니다.”

결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순간, 병원의 움직임이 다시 빨라졌다. 엄마를 태운 침대가 바퀴를 굴리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결은 간호사를 따라가며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창백하지만, 눈을 떴다.

“엄마!”

결이 손을 뻗었다. 엄마가 힘겹게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그 미세한 움직임이 결의 심장을 조였다.

하지만 아빠는 아직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Andante – 천천히, 그러나 흐르는 시간

병실에 도착한 후, 엄마가 천천히 누워 있는 것을 보자 결의 심장도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간호사가 상태를 확인하고, 링거를 조정했다.

결은 엄마 옆에 앉아 손을 잡았다.

“엄마, 이제 괜찮아질 거야.”

엄마가 힘겹게 웃었다. “우리 결이… 많이 기다렸지.”

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고, 아빠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혼자가 되었다.

보호자로서의 불편함은 대기실을 벗어나서도 이어졌다. 병실 한쪽에 마련된 보호자용 간이 의자는 딱딱하고 좁았다. 결은 어떻게든 몸을 웅크려보았지만 등을 기대기도 어려웠다. 엄마 옆에 가까이 앉고 싶었지만, 링거 스탠드와 의료 기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가까이 가기도 힘들었다.

병실의 공기는 답답했고,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환자를 위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간호사의 설명이 있었지만, 결은 계속해서 무거운 공기 속에서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결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보호자는 단순히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와 함께 병을 견뎌내는 사람이야. 그런데 왜 보호자는 이렇게 불편해야 할까?’

그녀는 다시 병원 복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혹시 나 같은 아이가 또 있을까? 엄마가 아파서 혼자 남겨진 아이가? 도움이 필요하지만 누구에게 말할지 모르는 사람이?’


병원의 리듬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결의 마음속에서는 조용히 새로운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했다.



* 음악적 용어(빠르기)
Rubato | 루바토 | 전반적인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곡의 어느 부분에서는 일시적으로 재량껏 빠르거나 느리게
Allegro | 알레그로 | 빠르게, 명랑하게
Adagio | 아다지오 | 침착하게 느리게
Andante | 안단테 | 조금 느리게, 나아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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