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물먹는톱니수국색
여름이 온다 싶었더니 장마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비 피해로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소식들이 들린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꽃! 수국이다. 수국의 한자 이름은 수구화(繡毬花)다.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란 의미다. 수구화는 모란처럼 화려한 꽃이 아니라 잔잔하고 편안함을 주는 꽃이다. 꽃 이름은 수구화에서 수국화 수국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물 수+국화국(水菊, Hydrangea macrophylla)이다. 속명의 Hydrangea는 물을 뜻하는 'Hydro'와 '그릇'을 뜻하는 'angeion'의 합성어로 '물그릇', 물을 많이 흡수하고 증산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 번은 연주회가 있어 꽃을 사러 갔더니 제일 키우기 쉬운 꽃이라고 플라워리스트가 말해주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 물 주는 것조차 힘든 나인데..'나는 키우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다른 꽃으로 선택하여 주관적인 선물을 준 기억이 있다. 강의를 하는 시간에도 마른 목에 물 한 모금 주지 않는 나였다. 물을 좋아하는 알록달록한 수국이 그 화려한 색을 꽃피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 자신이 어찌 보면 사람들에게 하는 말과 나에게 진심으로 하는 행동은 달랐을까. 반성하면서 보니 꼭 사람처럼 수국도 진짜 꽃과 가짜 꽃이 공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암컷, 수컷을 같이 가지고 있는 달팽이처럼, 수국은 꽃이지만 중성이다. 양성화(両性花)와 장식화(装飾花)로 두 가지의 꽃이 피는데 잘 관찰해 보시길. 작은 꽃들이 밀집한 중심부를 양성화, 눈에 보이는 겉을 감싼 부분이 장식화이다. 이 장식화의 꽃잎 같은 부분은 사실 꽃받침으로, 이렇게 아름다운데도 생식 기능이 없다. 암술과 수술을 가진 진짜 꽃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자세히보면 예뻐보이는데도 가장자리는 톱니모양으로 날카롭다. 양성과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잎이 크고 화려한 장식화 수국이 곤충들을 유인한다. 곤충이 짝짓기를 하는데 중매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역할을 다 하고 나면 시들어버린다.
옆에 시든 꽃을 볼 때면 이 저출산 시대에 국가유공자 인증이라도 해줘야 하나 싶은 생각이 간혹 든다. 역시 꽃에게도 하늘은 두 가지 재능을 주지 않는 걸까. 겉모습이 화려한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것인가. 볼품은 없지만 내공으로 꽉 찬 실한 사람이 될 것인가. 알고 보니 허탕이라는 말을 안 듣도록 노력해야겠지. 때론 누구에게 평가받기보다 자유롭고 싶기도 하다.
거의 모든 생명이 그렇지만, 태어나고 처음 필 때에는 매우 연하다. 흰색으로 피었다가 토양의 산도에 따라 꽃색깔이 달라진다. 파란색, 분홍색, 보라색, 연두색까지 다양한 색은 연출하는 공작새 같다. 꽃 안에 들어있는 '델피니딘(delpinidin)'이라는 색소에 의해 결정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씨앗 종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 수국이 자라나는 토양에 알루미늄 성분이 많으면 산성토양이라고 하는데 안토시아닌과 결합하여 푸른색 꽃으로 변한다.
토양이 알루미늄이 부족한 염기성이면 붉은색의 꽃으로 피어난다. 색을 바꾸고 싶다면 꽃 주위에 백반을 두고 물을 주면 흰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하고 달걀껍데기나 석고가루 등을 뿌리고 물을 주면 분홍색으로 변한다, '물먹는 하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물을 잘 먹는데 어릴 적 과학실에서 들었던 리트머스용지처럼 꽃의 색이 변하는 농도에 따라 토양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여름에 빛나는 꽃이다. 조금만 건조해도 바로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수국을 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수국은 관상용으로도 좋지만 차로도 마신다. 잎은 말려서 차로 만들어 마실 수 있다. '감차수국', '감로차', '이슬차'라고 들어보았는가. 설탕을 넣지 않아도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단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천년 당이 오히려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서 당노병 환자들에게도 좋은 차라고 한다. 하지만 과다복용하면 담석이 생겨 탈이 나기 때문에 뭐든지 적당히가 좋다.
하지만 수국은 이파리에 청산계 독이 있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 혹시나 먹었을때, 약 30분이 지나면 구토와 현기증을 부르기도 한다. 예쁜 여자에서 반하고 정신 차리라는 교훈을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국의 꽃말은 색상에 따라 다른데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변덕'이라는 꽃말의 씽크로울이 맞다. 파란 수국은 '텔러블루'라는 명칭으로 유통되고 있다. '냉정', '냉담'이라는 차가운 이미지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너무 관대하지 말고 스스로 냉정함을 찾자는 교훈으로 나는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파란 장미는 ‘기적'의 꽃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희귀하고 귀하다'는 의미의 긍정적인 꽃말도 있으니 언어에도 마법을 부려보시길.
찐 분홍색의 수국꽃말은 '처녀의 꿈', '진실된 사랑'이다. 그래서 웨딩 부케로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연분홍색 수국꽃말은 '강한 사랑', '우정', '순수함', '영원한 행복' 등이다. 보라색의 수국꽃말은 '첫사랑의 추억'이다. 추억 중에서도 제일 풋풋하여 새록새록 한 번씩 생각나 웃음 짓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 선물하는 꽃으로도 유명하다.
오늘은 올여름 수국 축제에 가서 수국으로 마음도 달래보고, 예전에 갔던 기억이 있다면 다시 되새김질해보는 추억타임머신을 타 봐도 좋을 것 같다.
이래서 사람들이 꽃멍, 풀멍~ 물멍~ 하는구나^^
냉수 한잔 마시고 무더운 여름을 잘 이겨내길.
바람둥이 같지만 수국의 색처럼 다양한 부캐를 만드는데 최선의 하루를 만드는 내가 되길.
누가 머라고 해도 오늘만큼은 마음과 내공이 진심을 찾아가는 시간으로 시원한 하루가 되길.
오늘 당신의 색은 무슨 색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