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노출콘크리트색
걷다 보면 회색 벽이 훤히 드러난 건물을 볼 때가 많습니다.
페인트칠도, 타일도, 마감재도 덧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벽,
그것이 바로 노출 콘크리트입니다.
건축가들은 일부러 그 거친 질감, 회색 빛깔, 작은 기포 자국까지 고스란히 살려내며
‘미완성의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노출 콘크리트의 색은 어디까지나 회색입니다.
햇빛이 비치면 부드러운 은빛으로 빛나고, 비에 젖으면 깊고 어두운 회색으로 가라앉으며,
손바닥을 대면 서늘하고 단단한 질감을 전해줍니다.
이 회색은 도시의 차가움, 산업의 힘, 그리고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따뜻하며, 결코 꾸며내지 않은 솔직한 표정이지요.
흔히 회색은 무채색, 즉 색채의 부재로 여겨지지만,
노출 콘크리트의 회색은 오히려 섬세하고 풍부한 색채로 가득합니다.
빛의 각도, 시간, 계절에 따라 색감이 달라지고,
표면의 작은 요철이나 틈, 기포 자국들이 고유한 패턴을 만들어냅니다.
그 속에는 질감이, 감각이,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지요.
노출 콘크리트의 미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건축가로는
일본의 안도 다다오와 스위스 출신의 르 코르뷔지에가 있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인 물의 교회, 빛의 교회에서는
콘크리트 벽에 비치는 물빛과 햇빛이 공간을 채웁니다.
그 회색 벽은 절제된 단단함 속에서 자연의 색과 맞닿으며,
인간의 내면을 사유하게 만드는 무대가 됩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에서는 콘크리트의 단단한 질감 위로 빛과 색의 조각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의 건축은 인간과 빛, 공간이 만들어내는 종교적 감정, 영혼의 울림을 담은 회색 캔버스였던 것이지요.
노출 콘크리트의 색은 완벽하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본연의 모습으로 서 있기 때문에 더 특별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때로는 꾸밈을 벗어던지고, 거칠지만 솔직한 모습으로 서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각자의 ‘노출 콘크리트’ 같은 순간 아닐까요?
오늘 회색 벽 앞에 섰다면,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감정을 잠시 느껴보세요.
그 안엔 차가움 속의 따뜻함, 무채색 속의 감각,
날것의 아름다움이 숨 쉬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느덧 아홉째 브런치북 마지막 글이네요~
*이미지 및 참고자료*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26/20130726021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