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갈빛앵치노가리색
생선이라면 너무 익숙해요.
은빛 비늘과 냄새가 떠오르지만,
노가리의 투박한 황금빛은 마치 잘 마른 겨울 볏짚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색감입니다.
작은 손으로 살짝 떼어 입에 넣으면,
바삭한 듯하면서도 질긴 그 식감이 짭조름한 맛과 함께 퍼지곤 했지요.
노가리는 사실 명태의 어린 새끼입니다.
'앵치'라고 불리기도 한답니다.
갓 잡혔을 땐 바닷속 은빛 비늘로 빛나던 녀석이,
차가운 겨울바람과 건조한 공기를 만나며 서서히 탈색됩니다.
바닷물에 젖은 투명하고 푸르스름한 살은
건조가 진행될수록 수분을 잃고, 섬유질이 응축되며 황톳빛 또는 연한 금색으로 변하지요.
수분이 빠지면서 산소와 접촉해 표면 단백질이 산화되고,
햇빛에 노출되면 미세한 마이야르 반응(갈변 현상)이 일어나면서
노가리 특유의 따뜻한 색감이 완성됩니다.
사실,, 오늘 글감은 "노가리 까고 있네"라는 지인의 말에서 영감을 받았지요^^;;
살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야, 우리 언제 노가리나 한번 까자.”
“쟤 또 노가리 까고 앉아 있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 우리는 수다 떨고, 긴 말을 늘어놓는 걸 ‘노가리 깐다’라고 표현할까요?
‘깐다’라는 말은 손으로 뜯거나 벗긴다는 뜻을 가집니다.
노가리는 이빨로 ‘뭉텅’ 베어 먹기보다는 손으로 천천히 뜯어야 하는 음식입니다.
그래서 술상에 노가리 하나 올리면, 그걸 뜯는 동안 술잔은 돌고, 말은 이어지고, 시간은 흐르고…
결국 ‘노가리 깐다’는 말은 오래오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빗댄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그래도 이 말에는 단순한 ‘말이 많다’는 뜻을 넘어,
사람들이 모여 앉아 편히 웃고 떠들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정취가 깃들어 있습니다.
즉, 노가리 깐다는 건 무의미한 잡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삶의 고단함을 풀어내는 아주 인간적인 행동인 것 같기도 해요.
또 궁금한 점.. 노가리는 반찬보다 왜 안주로 사랑받을까요?
황금빛은 인간에게 따뜻함, 편안함, 그리고 귀합니다.
차갑고 투명한 생선회보다,
노가리의 색은 이미 한번 인생의 추위를 견뎌낸 듯한 무게감이 있고,
그 건조한 질감 속에서 은근한 단맛과 구수함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술잔을 기울이며 곁들인 노가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의 농익은 맛, 어쩌면 우리가 오래도록 익히고 싶어 하는 인생의 색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요즘 우리는 너무 바빠서 가볍게라도 노가리 한 번 깔 시간조차 없습니다.
그저 말 많다고, 시간 낭비라고 흘려보내지 말고,
가끔은 편한 자리에서 소소한 말들을 나누며 노가리를 까보는 건 어떨까요?
그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로와 웃음, 그리고 작은 행복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노가리 깐다”는 말, 알고 보니 꽤 따뜻하고 맛있는 색깔을 가진 말 아닐까요?
*이미지 및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