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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가지런한] 작고 둥글지만 속이 알찬 완두콩처럼..

가지런한초록콩완두색

by 컬러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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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밥상 위에 종종 올라온 초록빛 동그란 완두콩은 유난히도 까다로운 반찬이었습니다.

으깬 감자 속에 박혀 있거나 밥 위에 올려져 있으면 괜히 꼭꼭 씹고 삼켜야 할 무언가처럼 느껴져 처음엔 불편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어느덧 누군가의 밥을 짓고 나누는 사람이 되니, 그 작은 완두콩이 전해주는 색과 맛이 얼마나 깊고 다정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완두(豌豆)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콩 두(豆)’가 이미 들어가 있어 ‘완두콩’은 말하자면 ‘콩콩’이라는 뜻의 겹말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이름 속에도 반복과 강조의 무의식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농경 사회에서 완두콩이 얼마나 친근한 먹거리였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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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의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고, 인류가 농사를 시작한 초기부터 함께한 식물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재배되었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진 작물이지요.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거쳐 들어왔고, 봄철 보리밭 가장자리에 심거나 텃밭 구석에 가꾸던 완두콩은 주로 찐 콩이나 죽, 전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완두콩이 자라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색의 시(詩)입니다. 씨앗을 심고 며칠 지나면 땅 위로 파릇한 떡잎이 얼굴을 내밀고, 이내 연둣빛 줄기가 꼿꼿이 자라납니다. 시간이 지나며 줄기는 짙은 녹색으로 물들고, 나선형 덩굴손이 주위의 무언가를 부드럽게 감싸 안습니다. 그렇게 올라간 끝에 피어난 꽃은 하얀색 또는 연보랏빛이며, 어느새 꽃 뒤에 조용히 열매가 맺힙니다. 그 속에는 조밀하게 자리 잡은 동그란 초록 알갱이들이 순서를 기다리듯 고요히 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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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의 초록은 성장의 증거입니다.

어린 줄기의 연초록은 가능성이고, 짙어지는 잎의 녹색은 단단해지는 인내입니다.

그리고 속이 꽉 찬 완두콩의 선명한 초록은 스스로를 채워가는 성숙함을 상징합니다.


지금 이 계절,

완두콩을 한 알 집어 입에 넣으면 자연이 만들어준 신선한 단맛과 푸릇한 향이 퍼집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합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손길과 햇살 속에서 이렇게 조금씩 자라나고 있음을요.


완두콩처럼 말이지요.

작고 둥글지만, 속이 알차고, 색이 선명한 사람으로.


오늘, 네 마음은 무슨 색인가요?




*이미지 및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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