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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러코드 Aug 16. 2024

[존재이유] 황금빛으로 물들려면 즐겁게 준비하자.

성숙한벼이삭황록색



우리들의 주식인 쌀, 그 작은 한 톨이 밥이 되어 숟가락에 모여 배를 기쁘게 해 준다.

지금은 참 편하게 밥을 먹지만 예전부터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농부의 고마움, 전래동화에서 내려오는 조상들의 노고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한 톨이라도 남기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별명이 밥순이라 아침에 모닝 빵, 점심에 냉면, 저녁에 햄버거나 치킨을 먹으면 나는 오늘 "굶었다"라고 말한다. 이상하게 쌀을 안 먹으면 허~하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 음식들을 잘 못 먹는 건 아니다. 매우 잘 먹고 편식하지 않는다. 다만 없어서 못 먹는다. 그래서 매번 메뉴를 선택할 때는 힘들다.

그래도 요즘에는 그런 고정관념을 조금 없애고 다른 나라 주식도 밥이 된다고 이해하는 중이다.


아가씨 때에도 데이트할 때면, 스테이크 먹을래요? 피자 좋아해요? 스파게티 먹을까요? 하면,

내 대답은 "그냥 밥 먹어요."였다.


한 톨이 1.44kg이 되면 한 되, 10되가 1말(14.4kg)로, 10말이 1 섬(144kg)으로 전통 단위였다면

이제는 10kg, 20kg으로 그램 단위로 말한다. 힘들었던 그 시절의 가치가 단위로도 설명이 될 만큼 '되, 말, 섬'이라는 단위는 이제 책을 보지 않으면 경험하기 힘든 부분이다.


한국어의 "쌀"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인도의 남부 지방에서 사용되는 타밀어에서 쌀을 'sal'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상도 지방에서는 쌀을 '살'이라고 발음한다.


"쌀"이라고 한다면 결혼하고 한 번도 직접 산 적이 한 번도 없다.

일하다 바빠서 혼자 굶은 적 말고는 집에 쌀이 떨어진 적이 없다. 일단 무조건 감사해야 할 일이다.

결혼 10년 차 지금까지 시댁에서 매 번 챙겨주시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시댁에서 쌀을 주신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시댁 어른들이 시골에 사시는 농부인 줄 안다. 아니다. 같은 부산 땅에 살고 있다.

그냥 당연하게 받아왔던 쌀이 벌써 10년이 되다니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고마움을 절 때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잊어서도 안된다.


혼자 지을 수 있는 밀 농사와 다르게 쌀은 공동 작업이 필요하다.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수로도 만들어야 하고 모내기 같은 작업도 함께 해야 한다.


우리가 디자인에서 Co-Creation을 하는 맥락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디자인뿐만 아니라 경영이 필요한 모든 곳에서 해야 할 전략적인 중요한 요소이다.

Co-creation의 "Co"는 "함께"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로 "Creation"은 "창조"를 의미한다.

소비자와 기업 간의 소통 과정에서 실현된 가치 창출을 의미한다 (Prahalad, 2004).
즉, 기업과 고객이 공동으로 가치창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와 기업이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제품, 서비스, 경험 등을 공동으로 창출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기업이 외부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레고 아이디어스"플랫폼이 있다. 사용자들이 새로운 레고 세트를 디자인하고, 커뮤니티의 투표를 통해 상용화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벌써 가을이라기에는 성급하고 날씨가 너무 덥다. 하지만 금방 수확의 시기가 온다.

그래서 황금빛 벼색이 아니라 '성숙한벼이삭황록색'이라고 네이밍 해보았다.

재미있게도 벼는 생장 단계마다 색상이 달라지고 계절적인 변화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상상해 보자.

연한 갈색으로 벼의 씨앗이 발아하면서 싹을 틔우는 단계이다.

연한 초록색으로 싹이 자라서 작은 묘목이 된다. 충분한 빛과 영양분을 받으면 빠르게 자라 가는 시기이다.

진한 초록색으로 벼가 여러 개의 줄기를 형성하며 성장하는 단계이다. 잎과 줄기가 길게 뻗어 성장한다.

황록색으로 변하며 벼가 이삭을 형성하고 나오는 시기이다.

황록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하며 벼의 이삭이 점차 성숙해지면서 벼알이 형성되고, 이삭이 채워지는 단계이다.

완전 황금색으로 벼가 완전히 익어서 고개를 떨구고 수학할 준비가 된 단계이다. 논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할 수 있다.


성장하면서 연한 갈색> 연한 초록색> 황록색 > 황금색으로 성숙도를 나타내는 변화단계를 색으로 관찰할 수 있다. 황록색은 초록색과 황금색의 중간단계로 완성 전 단계의 열정과 황금을 느낄 수 있다.

 

벼 > 이삭 > 쌀 > 밥까지 파종 후 약 120일에서 150일 정도의 생장기간이 필요한데 꼭 사람이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최소의 시간투자를 하듯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 또한 자연의 이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


지금 황록색의 이삭은 넓은 벌판에서 자유로이 비, 바람을 맞으며 여행하는 방랑자 같기도 하겠다.

앞으로 내가 어디로 갈지, 어떤 브랜드를 만나서 어떤 패키지에 들어가게 될지, 팔릴 순간은 언제인지, 어떤 사람이 사가서 언제 밥이 되고, 어떤 그릇에 담겨 누구의 입으로 들어갈지 막막할 것이다.


쌀의 수확시기가 대략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이니 8월 중순 지금이 딱 황록색 진입 시기이다.

수확을 하려면 벼의 성숙도를 확인하는데 벼알의 수분 함량이 20% 이하로 떨어질 때 적절한 타이밍이다.

충분히 익어서 황금색으로 변했을 때에는 사실, 수분도 없고 건조하며 곧 수확되어 잘리고 기계에 털려 아프고 답답하게 봉지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재미가 없고 무료해진다.


매일의 오늘 하루가 제일 시작하기 좋은 날이고,

결과보다는 지금 과정이 더 재미있고 신나지 않을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완벽하기보다 꾸준히 노력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지금까지도 어려움을 견뎌냈음이

나의 존재 이유지요.


황금빛이 나는 황금기, 조금만 더 막바지 힘을 내보자.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즐기는 사람을 못 따라간다고 하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힘내는 거예요.

황금이 부담스러우면 지금 황록기를 더 길게 가지면 돼요.

어때요? 충분히 황금빛 기다려줄 수 있죠? 천천히 준비할 수 있겠죠?


오늘, 나는 무슨 색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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