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기차에 올랐다. 창가를 통해 스며드는 볕은 유독 몽글몽글 따사롭다. 다른 교통수단과는 달리 일정한 마디로 불규칙적이듯 들리는 규칙적인 선로를 달리는 덜컹이는 소리도 기분이 좋다.
많은 이들이 역사에서 기차로 몸을 실었지만, 들리지 않는 이어폰을 꽂은 순간 내게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볕, 덜컹이는 기분 좋은 흔들림만 있을 뿐이다. 물론 아직 아무도 앉지 않은 내 옆의 빈자리도 내 고독에 한 표를 더해주고 있다.
언제나 기차는 내게 설렘과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학교로의 통학을 위해 탔던 짧은 한 시간의 기차행 역시 그랬다. 어딘가로 떠날 때, 금전적인 여유만 된다면 난 늘 버스보단 기차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끄러울 세상도 그저 흐르는 풍경에 불과하고 수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그들의 시간도 그저 내겐 고요히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하다.
목적지는 있지만 가는 동안 내게는 아무런 목적지가 없다. 그저 흐르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을 뿐이다. 어딘가로 여행을 할 때에도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목적지에서의 행위는 내게 별 미동을 주지 않았다. 그저 가는 동안 버스건 비행기건 기차건 날 그리로 옮겨주는 수단 안에서의 고요한 흐름만이 내게 무언가를 주었을 뿐이다.
별생각 없이 기차에 앉아 글을 쓰는데, 삶 역시 지금과 별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깨달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한 표현이니 쓰지 않겠다. 이런 고요한 박동이라면 난 늘 기차 안이고 싶다. 천천히 도착했으면 좋겠다. 그 목적지가 어디든, 사실 내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듯싶다.
지난 시간 당신이 내게 쓴 편지의 한 구절처럼 삶은 역시 여행이다. 그 여행을 같이하길 바란다는 당신의 말과는 달리 혼자 하는 여행이 됐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다. 물론 누군가 옆에 있으면 그도 나름대로 좋았을 테지만, 내게는 빈자리가 더 어울린다. 잊고 있던 삶은 여행이라는 말이 다시금 되새겨졌다.
두 시간 정도 후면 난 법원에 도착을 할 것이다. 그리 나쁜 여행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