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글#일기
크게 바란 건 없었다. 그저 날 사랑해주기를, 언제나 내가 첫번째가 되어주기를, 내가 그대의 삶의 이유자 원동력이기를, 그저 날 사랑하기를.
그게 내가 전 남편이자, 내 아이의 아빠에게 바랬던 유일한 것이었다. 날 사랑하기를,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했던 사람이었다. 내 마음이 시켜서라기 보다는 내 머리가 시켰다. "열심히 사랑하라, 이전에 네가 그렇지 못했던 것 만큼". 그래, 지난 사랑에 대한 일종의 회개였다. 나만의.
위태로웠던 시간에 얼떨결에 잡은 손이었고, 그런 혼돈을 사랑이라 착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사랑이었다. 적어도 나는 말이다.
나는 다 괜찮았다. 내가 모든 걸 져버려도, 그대가 나를 사랑하기만 한다면, 그래서 수십번 그대에게 되물었다. 내게만 솔직해달라, 나는 괜찮으니 혹여 말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말을 해달라. 그렇게 그 말을 그 시간의 끝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너도 새롭게 네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겠지, 지난 모든 걸 털고 행복해지고 싶은 걸 거야. 그러나 모든 것은 나의 착각이고 오해였던 걸까. 내 사랑이 너에겐 그저 쉬워보였나보다. 진작에 네 진짜 목소리를 들었다면, 모든 물질적인 손해는 둘째치고, 내가 이렇게까지 상처받지는 않았을텐데. 이번 일로 인해 난 내가 사랑했던 너를 잃은 게 아니라, 여자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다.
내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내 꼴이 얼마나 같잖았을까. 내 아들이 얼마나 귀찮았을까.
이전의 나는 때때로 눈물로 외로움을 달래고, 우울로 우울을 달랬으나, 이제 더는 눈물을 흘릴 수도, 우울에 젖을 수도 없는 엄마가 되었다. 어떻게 삭혀야 할까. 어떻게 버텨야 무너지지 않을까.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모래성 가운데 꽂고 쓰러지지 않게 흙을 걷어내는 게임이 있다. 내가 꼭 그 게임의 막바지 같다. 톡 건들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모양새의 위태로운 마른 가지.
서류에 첨부할 녹음파일들을 듣다, 마지막 통화 파일을 들었다. 그곳엔 역시나 사랑이 없었고, 난 온전하게 지쳐있었다. 그저 끝까지 날 기만하려 했던 너의 가증만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