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에세이 #글
지금은 오전 다섯 시 오십칠 분이다. 오늘은 휴일이고, 새벽 네시에 잠에서 깼다. 잠을 뒤척이던 아이는 답답했는지 거실로 나가 남은 잠에 들었고, 잠이 오지 않는 나는 난방을 돌려 샤워를 했다.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몸을 닦고, 바디로션을 바르고, 옷가지를 주워 입고, 따뜻한 기운에 슬슬 잠이 오는 듯한 무거운 느낌에 배를 깔고 바닥에 엎드려 이전에 사두었던 이상문학작품집을 꺼내 읽었다. 휴대폰은 다른 방에서 충전을 하고 있고, 아이패드로 Glenn Gould의 음악을 랜덤 재생해 놓았다.
딱 이 정도의 아침이면 좋겠다. 딱 이 정도의 새벽 공기가 좋다. 딱 이 정도의 기분이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 서랍 한 구석에서 잠들어있던 노트북을 꺼내 일기 아닌 일기를 적어 내려가고 있다. 평상시 같으면 휴대폰으로 했을 법한 부분적인 일상들이 어느 정도 지금 이전의 (디지털이긴 하지만 지금이 아닌) 아날로그로 돌아간 기분이다. 다른 건 휴대폰을 잠시 멀리한 것뿐이다. 그랬더니 이렇게 삶이 길어졌고, 디테일해졌으며, 이야기가 생겼다.
종종 휴대폰을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지 마음을 먹지만, 이내 곧 포기 아닌 포기를 하고 만다. 이미 삶 깊은 곳까지 번져버린 스마트한 라이프다. 이 편리함을 져버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다섯 시가 넘어 다른 방에 휴대폰을 가져다 두었으니, 모든 것은 한시오래간만에 일어난 깊은 생각이다. 고작 한 시간인데, 하루가 이렇게 깊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