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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Aug 04. 2017

꺼내보기

20150213일로부터

there and here


언제나 내가 말하고 쓰는 '순간 '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나를 낙관주의자로 둔갑시켜 주지만, 그렇게 모인 순간들의 긴 연속선상에 서 있는 나 자신을 어렴풋이 확인할 때면 결국 난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자로 변해 있곤 한다. 신데렐라에게 자정 같고, 개구리 왕자에게 키스 같은 거.


하염없이 방방 뛰고 발랄하고 높은 톤으로 깔깔 웃어대고 수다 떠는 나와, 공허한 표정과 생각 많은 갈색 눈동자와 불안하게 리듬 타는 손가락은 한 사람이 틀림이 없고, 나는 두 모습 모두 다독이고 달랠 수 밖에는 없는 일이다. 어제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며 질질 짜던, 오늘 추어탕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호호거리던 잊히고 까먹게 되고 마는, 사소하고 무수한 순간들을 순간들을 순간들을. 순간들을 사랑하고 사랑했고 사랑해야만 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딱 7일 전, 따듯하고 강렬한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그다음 7일 동안 서서히 가라앉아 쓸쓸해지고 안개가 끼고 희미해지다가 결국에는 '슬프다'라는 느낌을 가져오는 게 모순이고, 슬픈 것들은 모조리 아름답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인정하는 동시에 배반이고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나와 타자, 나와 그들, 나와 친애하고 사랑하는 나의 그들 그 사이의 공간이 종종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그때(내겐 보랏빛)의 그 시공간과는 별개의 인간인 것처럼, 새로운 시공간(침착한 회색)에서 다른 존재로 웃음 짓고 떠들고 맞춰서 살아가고, 또 살아가려 하고 있다. 결국 내 거짓 의지는 나를 속이고 만다. 우리는 저기 저 멀리 빛나는 별로 가기 위해 죽음을 탄다.(고흐) 나도 끝엔 기차를 타듯 저 별로 갈 수 있다.
    
사실, 대충 어떻게 될 거라는 걸 모조리 다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엔 나 자신을 기만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힘에 부치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겐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것.

오늘도 난 두서없이 엉망인 글을 오로지 나만을 위해 자위하듯 적어댔고, '내키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규칙에 따라 하루를 살아남았다. 나도 미도리같이 딸기 쇼트 케이크를 내밀어 주는, 내가 그걸 창문으로 던진다 해도 치즈 케이크든 초콜릿 케이크든 내게 또다시 내밀어주는 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받은 만큼 어김없이 사랑을 주고 싶은 이유일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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