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낮잠 Aug 04. 2017

diary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일

외국에서 날아오는 메일들을 지우지 않았다. 스팸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예를 들면 런던으로 떠나기 전 뮤지컬을 예약하느라 내 메일 주소를 남겼는데 그 후로 날아오는 뮤지컬 홍보 메일이라던가, 잠깐 살던 나라의 쇼핑몰이나 호텔에서 시즌 세일을 알리는 광고, 다시는 탈 일 없을 것 같은 외국의 항공사에서 날아오는 특가 티켓 같은 것들. 외국에서 떠도는 나의 마일리지는 아마 사용할 수 있는 숫자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할 거고, 바뀌어 버린 내 이름으로 정보가 수정될 일도 없을 채로 아마 계속 남아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메일들을 보면서 언젠가 다시 갈지도 모른다거나, 또 예전에 그랬었지 하고 생각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7년이든 10년이든 한자리에서 삶을 지속시키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출발을 시도하곤 한다. 정답은 없지만, 생겨먹은 대로 사는 것이 스스로를 잘 돌봐주는 일이 아닐까. 궁극적으로 뭘 하고 싶다기보다, 그저 어떻게든 삶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달래는 일. 그게 내게 주어진 일이다. 
- 15년 9월


17년의 9월이 이제 한 달 남았다. 올해도 어디론가 떠나지만 약간의 행복한 귀찮음, 모자란 화폐, 하지만 한편으로 안도감이 든다. 떠날 수 있어서 기쁘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걱정 반 설렘 반. 매년 나는 어디론가 갈 텐데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생겼다는 것은 축복해야 할 일이겠지.

작가의 이전글 꺼내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