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1

by 초록낮잠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개구리가 엉엉 우는 밤이었다.

창문을 하나 열고, 그 안쪽에 있는 창문을 하나 더 열었다. 방충망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19층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단순히 검은색이라 표현하기엔 뭔가 깊고 오묘해서 조금만 더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행성이, 은하가, 블랙홀이, 온 우주가 다 보일 것만 같았다. 방충망까지 활짝 열고 나니 밤바다에서 얇은 카디건만 걸친 채 서 있는 것처럼 살짝 한기가 돌았다. 이렇게나 쉽다니, 놀라웠다. 창 밖으로 뛰어내리는 일이. 굳이 한강에 있는 어느 다리까지 가지 않아도 이렇게 가까이 조용하고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높은 장소가 있었구나. 늘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이상하게도 연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윗 가슴까지 밖으로 내밀어 아래를 살며시 내려다보았다. 조각만 한 잔디밭과, 뭔지 모를 조형물, 조경이라고 하기엔 빈약한 공간이 보였다. 갑자기 언젠가 읽었던 슬프고 허망했던 기사가 떠올랐다. 창문 밖으로 이불을 털다가 균형을 잡지 못해 떨어질 뻔했던 A 씨는 너무 놀랐고, 집에 돌아온 가족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그 장면을 재현하다가 정말로 추락사했다는 기사였다.


창은 생각보다 크고, 창턱도 충분히 낮아서 마치 소파나 침대로 몸을 던지듯, 한쪽 다리만 살포시 얹으면, 균형만 아주 조금 놓치면, 다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연은 도박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숫자 관련한 재능은 아주 조금도 없다. 10년 하고도 11개월 동안 주식시장을 겪어 본 결과 국장은 유사 도박이거나 확실한 도박이 틀림없었다. 십만 원을 벌고 40 만원 마이너스가 됐다. 100만 원을 벌고 270만 원이 사라졌다. 또다시 300만 원을 벌고, 마이너스 580만 원이 되었다. 1200만 원을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41,034,000원이 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연의 계좌를 정확히 들여다보고 기대하는 것과 반대로만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았다. 통계를 보면 95%가 손해를 보고 5% 극소수만 돈을 버는 구조라고 한다. 지금까지 여전히 마이너스 137,100,980원이 넘는 손해를 보고 있음에도 연은 버는 돈을 족족 계좌로 넣었는데 그 이유는 결국 자신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라는 망상과 그렇게 꼭 되어야만 한다는 집착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생각하는 대로 이뤄지기도 했다. 그 판타지에 중독이 된 것인지, 자신이 예상하는 대로 시장이 움직였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연은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의 땔깜처럼 과감하게 배팅을 했고 그것들은 짧은 시간, 적당한 시간,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연의 피를 말리고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그 후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깨진 독에 물을 붓고 붓고, 살려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올라가는 종목들만 계속해서 올라갔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러니까 10년 11개월 동안 이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약 18년의 시간 동안 피와 땀으로 일궈낸 근로 소득을 잃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차곡차곡 모으는 것이 최고라고 믿었던 시간도 있었다. 잘못된 판단과 잘못된 선택, 모두 자신의 몫이자 탓이었다.


연은 스스로를 용서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럴 힘도 없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승리로 끝이 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까. 만약 그것이 확신이었다면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연은 끝내 승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연이 그 확신들을 망상이라 인정하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했을 때. 마치 그것들은 약을 올리듯 연의 선택이 모두 맞았다는 결론을 가져다주었는데 연은 딱 그 지점에서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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