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느 날 04
첫인상: 왜소한 체구지만 어딘가 모르게 강해 보였다.
E의 윗입술 라인 위로 철쭉 핑크빛 립스틱이 살짝 벗어나 발라져 있었고 경계가 모호해져 어느 것이 정말 그녀의 입술색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말할 때마다 그 입술 뒤로 고르지 못한 치열이 드러났다. 길어 보이는 속눈썹은 힘이 잔뜩 들어간 채 한껏 위로 올라가 있었고 눈 주위로 퍼져있는 연갈색 주근깨와 잔주름들이 보였다. 손가락의 모양은 곱지 못했고 말랐으며 핏줄이 도드라져 가죽은 상당히 탄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손톱을 가꾸려고 했으나 끝 쪽이 갈라지거나 메말라 있었고 머리카락 또한 숱은 많았으나 윤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약간 고집이 느껴지는 말투와 거침없는 목소리는 살아있음을 외치는 것 같았다. 파여있는 상처나 주름들은 더 이상 화장으로 숨길 수 없고, 곳곳에 자리 잡은 인상과 분위기도 그녀의 인생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눈동자.
그 알맹이만은 맑고 젊었다. 동공은 전혀 늙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나는 a woman in middle age의 눈동자만 기억에 남았고, 늙어버린 가죽의 잔상은 이미 잊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피부가 말라비틀어져도 내 눈동자만큼은 언제나 촉촉하고 젊음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가로 기록하자면 A는 입술이 탱탱하고 광이 났으나 눈동자가 탁했고, 가죽은 젊었으나 에너지는 불충분해 보였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나의 느낌일 뿐 별 의미는 없기에 난 그냥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저 검정 카디건에 정체 모를 흰 털 하나가 꼽힌 것이 계속 거슬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