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Record

from 2013

by 초록낮잠

time frame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9월 9일 2013년. 달력을 그리고 보니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날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무서워져 공책을 덮었다. 내일이면 타지에서 두 번째 생일이 된다. 사실 생일이라는 게 이젠 별로 딱히 큰 의미는 없다. 단지 두 번 그 날을 지났다는 것, 혼미한, 반 미친 정신 상태로 나의 영혼이 어떠한 것을 찾아 떠도는 동안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음을 새삼 상기시켜 주는 정도.

시간은 진짜 죽음보다 잔인하고 냉정하고 의연하고 신비로운 것 같다.

하루하루 살아 갈수록 점점 더 나라는 인간을 찾게 되는 것 같고

더 나다워지는 것 같고, 그래서 사실 불안하면서 충만한 건 사실이다.


golden age


우리는 과연 어떤 것들을 나누었던 걸까 정말 내가 너를 조금은 행복하게 해주었을까?
거대한 감정의 증폭제가 의도치 않게 예측 불가능하게 날 아직도 찾아와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이유는 알 수가 없다는 게 미스터리인 거지.
혼자 걸을 때,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울거나 웃는 수많은 순간순간들에 스쳐가는 생각들을 기록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때마다 내 손엔 기록할 것들이 없었고 그저 마음속에만 새겨놓고 다시 기억해내야지 했는데, 나름 힘주어 꾹꾹 새겼음에도 결국 그 이야기들은 어딘가로 깊이깊이 사라져 다시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더라.


-

R, 나는 검은 말이 되고 싶어.


그래? 난 흰색 상어가 되고 싶어.

식인상어 그래서 해변에서 매일 한 명의 어른 인간과 한 명의 아이 인간을 잡아먹고 싶어 아주 잔인하게.

난 웃었고 R은 백상어가, 난 검은색 말이 되어 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넌 바다를 난 초원을.

R은 말했다. 만약 네가 다리를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널 죽일 거야.

난 대답했다. 죽는 순간까지 달린다면 죽어도 뭐랄까 삶을 열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 거야 아마-
그렇게 우린 술에 취한 채로 한 참을 때 묻지 않은 아이같이 웃었다.

내 혈관에 알 수 없는 정상이 아닌 바이러스 같은 물질이 조금 흘러들어온 것 같아.
가슴은 두근거리고 멍한 기분이야. 잠을 꽤 잤음에도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한데도 일기 몇 줄도 잘 써지질 않고 아무런 말도 잘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아. 그 이름을 적으며 '네가 참 보고 싶다'라고 쓰는 건 좋아. 왜냐하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마치 세상에 없는 그 무언가를 향해 쓰는 '시'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그때의 너도 나도 그곳에만 사는 것 같아. 꿈같은 그냥 너를 의미하던 지금은 행방불명된 이름을 적으며 OO가 보고 싶다 라고 쓰는 건 참 좋아. 존재하지 않는 그 기억 속에 사는 어떤 것

이젠 바람이 조금 시원해졌고, 나보고 같이 달리자 하는데

나는 왜 진심으로 기뻐하며 달려갈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너와 나의 노래가 무거운 나의 영혼을 깨우고 물끄러미 내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줬던 때를 회상하고 있으면 이렇게 꼼짝 않고 눈을 감고 숨 조차 느리게 쉬고 있다 보면 그렇게 느리던 시간이 자꾸 달려가는 것 같다.


사라지는 건지, 오히려 숨을 느리게 쉴수록 시간은 빨리 간다. 9월이 간다.
어쨌거나 나는 무한한 차원의 시공간 속에서 당신과 나의 인생이 잠시나마 포개졌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린 거대한 기적을 이룬 것임을 인정할 것이다. 이것에 관해서 당신들은 어찌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단지 나는 따사롭고 상냥한 마음으로 당신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간 후에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Letter